스스로 예향이라 일컬으면서도 번듯한 시비(詩碑)하나 없는 청주지역에 우리고장 출신 문인의 문학비와 우리고장을 노래한 선조들의 명시(名詩)를새긴 시비가 건립된다는 것은 청주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예향의 면모를뒤늦게나마 일신한다는 점에서 크게 반길 일이다.

청주문인협회와 청주시가 추진하는 이 사업을 보면 오는 10월 상당산성입구에 청주출신 문인인 고 민병산의 문학비와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를 세운다는 내용이다.

지난 88년 작고한 민병산은 50년대, 충북예총을 탄생시키는데 산파역을 했을뿐만 아니라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청주에 문학예술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평생 청빈한 삶을 살면서 문학예술의 불꽃을 지핀 그를 문학비 건립의 첫번째 대상자로 정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후 책을 불살라 버리고 걸인처럼 전국을 떠돈 김시습은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천재적 시인이다. 그가 청주 상당산성을 찾으며 청주의 역사와 자연 풍광을 노래한 유산성(遊山城)이라는 명시가 현재까지 전한다.

「꽃다운 풀이 헤진 짚신에 파고 드는데/ 날 개이니 풍경이 청량하여라/ 들 꽃에는 벌이 와서 꽃술에 입맞추고/ 살찐 고사리에 비 내려 향길 더하네/ 멀리 바라보니 산하는 웅장하고/ 높이 오르니 의기도 드높아라/ 사양말고 저녁내 바라보시게/ 내일이면 바로 남방으로 떠나갈 것일세」 선비에서 승려로 변신했다가 환속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 시에서 보는듯 하다.

이외에도 청주를 소재로한 명시는 부지기수다. 임동철 충북대교수가 편역한 청주음(淸州吟)에만도 2백80여편의 한시(漢詩)가 등장한다. 한꺼번에 이를 모두 소화할 수는 없는 처지이므로 우선 김시습의 시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방방곡곡에 시비가 산재한다.

김삿갓의 시비는 영월에 있고 이효석의 시비는 평창에 있다. 군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엔 「탁류」의 저자인 채만식 문학비가 길손을 맞는다. 충북도만 하더라도 옥천에는 정지용의 시비가, 음성에는 이무영의 문학비등이 있다.

그 문학비는 각기 그 고장의 긍지이자 지역문화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다. 청주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일본 돗도리겐(鳥取縣) 흰토끼(白兎)해안에는 오오구로산(大黑氏)의 시비를 비롯, 돗도리겐 출신의 시비가 즐비하다.

유명 음악인의 노래비도 있다. 그런데 왜 청주지역에는 이같은 유형의 문학비가 없는 것일까. 그만한 문인이 없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마디로 관심과 의지의 부족이었다.동네 입구마다 마을 유래비가 잔치를 벌일 정도인데 막상 이고장 문학의 역사성을 살펴보는 문학비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만시지탄이나 이번 일을 계기로 문학비 조성사업이 활성화되어 문향(文鄕)청주를 기려나가기 바란다. 이은상의 작품 등 청주를 소재로한 문학작품도 이번 기회에 발굴, 한데 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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