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지났서도 기승을 부리는 마지막 더위가 여간 짜증스럽지 않다. 그러나 날씨보다 우리를 더욱 왕짜증나게 하는 게 있다.


「의료인 여러분! 환자 곁으로 돌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다 싶어 기억을 더듬었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소리였다.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이제 부모님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갑시다.」 그랬다. 수십년전 밤들도록 노닐던 청소년들이 행여 귀가시간을 놓칠까 내보냈던 캠페인 구호가 아니던가.

그런데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금, 이것이 보건복지부가 도하 중앙지에 수천만의 광고비를 쏟아 부으며, 최고의 엘리트 계층 의사들을 향해 호소하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정작 당사자인 의료인들은 쳐다 보지도 않는데, 그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노라며, 이들의 요구사항을 토대로 의료발전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말이다. 바둑이 불리하면 무리수가 나오고, 무리수를 거듭하면 악수가 남발된다.

요즘의 정부가 마치 그 짝이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근사한 구호와 함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며,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을 한답시고 밀어 붙이다가, 시행착오가 나자 아우성대는 의사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주겠다며 달랬다.

의료계의 1차 폐업때는 의료보험 수가의 인상과 약사법의 개정 약속, 그리고 이들 대표들을 구속하는 강온전략도 구사했다. 그러나 잠잠해지는 가 싶던 의약분업이 7월 한달간 시범운행후 또다시 재폐업에 돌입하자 정부는 또다시 갈팡질팡하고 있다.

심지어는 의료계가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의 해제를 내걸자 이들의 요구를 검토하는 듯한 인상마저 보이고 있다. 진료를 거부하는 의료계를 비난하기에 앞서, 정말 이런 정부를 믿고 따라도 되는 건지, 한마디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치민다.

의약분업인지, 아니면 의료계와 국민들을 괴롭히는 「으악분업」인지도 모르고 일단은 시행이나 해 보자며 저질러 놓고, 이제는 사태수습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꼴이 가관이다.

그 사이 진료비는 오르고, 환자(국민)들은 아픈 몸을 가눠가며 진단받자고 병원으로,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타러 이 약국 저 약국을 전전긍긍해야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인지 모를 진풍경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저 꾹 참고만 살아온 환자(국민)들은 제대로 병치료도 못받고, 인상된 의료수가까지 부담하자니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요즘같은 때에는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고 굳게 다짐해 보지만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도 않는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의사들의 집단폐업을 바라보아야 하는 국민들. 급기야는 보다보다 못한 시민들이 참을수 없다고 들고 일어났다. 시민과 노동단체들이 의약분업 정착 시민운동본부 현판을 내걸고, 의료계의 집단폐업 철회를 위한 범국민 대책회의를 구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료분업 파행 두달째, 의사도 지치고, 약사도 지치고, 국민들도 지칠대로 지쳤다. 정부는 뭘하고, 정치인들은 도대체 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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