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에는 문화자본론을 주장했다.
경제자본가가 아닌 문화자본가 계층이 존재하는데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문화자본가는 다른 자본을 밀쳐내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논리다.

70년대 그의 이러한 주장은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새천년의 화두를 문화에서 찾기때문이다.
민족문화를 형성하려면 치열한 문화의 인정투쟁과정을 거쳐야 한다. 쉽게 말하면 공자앞에서 문자를 써, 종당에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유럽의 전유물이다시피 알려졌던 오페라의 고정관념은 미국의 작곡가 거쉬인에 의해서 깨졌다.
거쉬인은 미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포기와 베스」라는 미국적인 오페라를 만들어 성공을 거두었다.

문화자산을 그대로 둘때와 거기에다 어떤 부가가치를 부여할 때와는 그 결과가 천양지차로 나타난다.
뮤지컬 명성왕후가 세계 무대를 두두리고 우리의 오페라 이순신이 오페라의 본고장인 로마 무대를 노크하는 문화의 쌍방향 시대, 세계화 시대를 맞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시점에서 청주가 갖고 있는 문화 자산중 으뜸에 해당하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오페라로 만든다는 일은 가히 지방 문화사에 혁명적인 일로 기록된다.
우리 고장을 무대로 한 오페라를 만든적이 없기 때문이다.

「직지」오페라 공연은 여러 면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로칼 스탠더드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는 점이 첫번째 의의요, 우리 고장이 힘과 예술인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이 두번째 의의다.
또한 중견국악인 박범훈씨에 의해 작곡됨으로 해서 국악과 양악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가 탄생케 된다는 점도 각별한 의미를 띤다.

「직지」오페라는 소재 자체부터가 예술로 부터 출발한다. 영웅담도 아니요, 정치극이나 목적극도 아니다.
「직지」를 초록한 백운화상과 그 제자들의 창조정신, 장인정신이 부각되고 이를 찍어내는데 후원자가 됐던 비구니 묘덕의 이타정신과 개척정신, 그리고 원나라로 부터의 독립정신을 응축한 너무나도 충북적인 오페라다.

어찌 중국과 일본을 무대로한 「투란도트」나 「나비부인」만이 훌륭한 오페라이겠는가.
한국적인, 충북적인 「직지」오페라의 출현은 서구의 전유물이라는 오페라의 고정관념을 깨는데 어떤 발파제가 되리라 기대된다.

오는 9월 세종문화회관과 청주에서 공연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공연결과에 따라 세계무대도 노크할 채비를 차려야 마땅할 것으로 본다.
미국 앨 고어 부통령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나 일반화에 실패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력 시사주간지인 미국의 라이프지도 지난 2천년간 인류의 최대업적을 인쇄술의 발명으로 꼽았으나 그 대상이 「직지」가 아닌 구텐베르그 활자다.
이제 천년의 깊은 잠에서 「직지」를 깨워 그 올바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오페라의 선율을 따라 「직지」의 무지개를 청주, 아니 세계의 하늘에 띄워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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