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새봄의 끝자락에 오가는 남녘의 소년이나 붘녁의 소년 얼굴엔 들꽃같은 해맑은 미소가 머물러 있다.

표정상으로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취향을 찾아 볼 수 없는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북의 어린이들도 가까이 보니 우리와 같은 얼굴이다.

배달의 골격을 갖추고 겨레의 살과 피를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반세기 동안이나 서로의 문을 닫고 눈을 흘기며 살아온 것일까.

격동의 근대사가 가져다준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이다.

그것도 부족해서인지 민족분단의 아픔을 우리는 대물림하고 있지 않은가.

같은 모습에다 같은말과 글을 쓰는 같은 민족이 이토록 오래 갈라서 삿대질을 하는 것은 현대사의 행간에서 극히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엊그제 평양학생소년예술단 70여명이 서울에 왔다.

지금까지 문화, 체육 등에 있어서 어른들의 남북 교류는 간헐적으로 있어온 터이지만 북의 소년들이 남한에 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가 있듯 판문점을 통하면 버스로도 한나절인데 그 가까운 길을 두고 중국을 통해 김포공항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그 길을 오는데 자그만치 반세기가 걸렸다.

리틀엔젤스의 98년 평양공연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초청돼 서울에 온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은 잠실 롯데월드호텔에 머물며 오늘부터 28일까지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합창과 무용 등 5회 공연을 갖는다.

이들 영접에 나선 리틀엔젤스는 「우리의 소원」과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를 합창하며 서로 얼싸 안았다.

남북의 소년, 소녀 소망대로 「우리의 소원」이 새 천년 벽두에 이뤄지고 서로를 만나메 『반갑습니다』를 인삿말로 건넨다면 해묵은 미움의 덩어리가 봄볕에 눈 녹듯 사그러 들게 분명하다.

어른들이 갈라놓은 땅덩이와 마음을 행여 어린이들이 합쳐 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시대에 미완성으로 남겨 놓을 통일조국이라면 최소한 통일의 마음을 심는 작업이라도 후세에 전해야 할 판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성사된 남북 어린이 교류는 통일의 전주곡이자 통일나무 심기라는데 각별한 의미가 있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되는게 아니라 그 오랜 어른 싸움을 아이들이 말리며 화해의 물꼬를 트는 격이다.

조선조 명신인 백사 이항복이 어릴때 이웃집과의 어른 싸움을 특유의 기지로 말렸다.

이항복의 집 감나무 가지가 이웃 집으로 뻗어 넘어가자 그 집에서 감을 따 먹었다.

어린 이항복은 그 집을 찾아 다짜고짜 창호지에 주먹을 디밀며 『이 팡이 누구 팔이냐』고 따졌다.

그 일이 있은 후 양쪽 집은 화해하여 사이좋게 감을 나누어 먹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때마침 5월은 청소년의 달이다.

남녘의 소년에게도, 북녘의 소년에게도 봄볕은 공평하게 찾아든다.

동강난 산하에도 어김없이 새싹이 돋고 그 잎새는 여름을 향해 푸르름을 더해간다.

남남북녀 한데 어울려 신채호 선생의천고(天敲)처럼 하늘 북 둥둥 울리며 삼천리 강산의봄과 화해를 재촉하는 민족의 대동굿판을 신명나게 펼쳐보자.

감도 나누어 먹고 춤도 함께 추고 노래도 함께 불는 겨레의 대서사시를 남북의 새싹들에게 기대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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