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고 골이 깊으면 마음 또한 넉넉한 법인데 인륜이 증발하고, 있는 것마다 황금으로 보이는 말세적 세태라서 그런지 요산요수(樂山樂水)는 한낱 선인(仙人)을 지향하는 속된 무리들의 부질없는 꿈인듯 싶다.

청주와 보은을 잇는 피반령(皮盤嶺)은 예로부터 험준한 산길이나 미원으로 돌아가는 신작로가 나기 이전까지는 엄연한 국도였다. 조선시대의 명신오리 이원익 대감도 이길을 지났고 율봉역∼쌍수역을 지나던 파말마도 이길을 지나 회인∼보은에 이르렀다. 역사의 향취가 듬뿍 배인 피반령은 해발 3백61m에 불과하나 산세가 빼어난데다 역사의 이야기들이 열두 구비마다 두런 두런 피어나는 유서깊은고개다.

얼마전부터는 도로확포장 공사로 옛 국도의 기능이 되살아 나면서 통행량이 부쩍 늘고 있다. 버려지다시피한 옛길이 생명력을 얻어 부활하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이 고개는 잦은 범죄로 인해 괴상한 고개로 전락하고 있다.

교통사고 다발지점임은 물론 강력사건과 지능범죄의 장소로까지 이용되고 있으니 피반령의 먹칠한 명예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최근에 밝혀진 보험금 위장살인을 보면 인간이 저토록 악랄하고 교활할 수 있는가 장탄식을 아니할 수 없다.

마치 무슨 미스터리물 영화를 보는것 같다. 취객을 자신의 태에 태우고 피반령 으쓱한 곳에 이르러 취객과 함께 승용차를 낭떠러지로 밀어뜨려 숨지게한 사실이 무려 5년이 지나후에야 밝혀졌다. 범인은 자신의 옷을 취객에게 입히고 결혼반지를 끼우고 차량에 불을 질렀다.

외형상으로는 자신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고 그로인해 수억원의 사망보험금을 타냈다. 경찰의 눈도 감쪽같이 속인 것이다. 호적상에서 사망처리된 당사자는 무려 5년이나 도피생활을 해오다 불시검문끝에 지문조회로 범행전모가 드러났다. 하마트면 영원히 미궁에 빠질뻔했던 사건이다.

취중에 차를 타고 졸지에 목숨을 잃은 자는 얼마나 억울하겠으며 그 가족의 고통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경찰은 이번사건을 교훈삼아 실종신고가 접수될시 가출정도로 가볍게 처리하지 말고 실종자의 가족 입장에서 신속하게 대응해 주길 바라며 강력사건발생시 고정관념을 깨는 초동수사와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외에도 피반령은 온갖사고로 얼룩져 있다.

주식투자에 실패한 사람이 이곳에서 자살을 하는가 하면 20대 여자및 중년 여자의 시신이 살해유기되는 등 강력사건이 최근들어서만도 4건에 이르고 있다.

계곡이 깊고 통행이 뜸해 강력사건이 발생해도 잘 눈에 띄지않는다. 그럼에도 7㎞ 전구간에 가드 레일 조차 미비하다. 보은방면으로는 가드 레일이 모두 설치됐으나 청주방면으로는 이도 없다. 양쪽 고갯길이 험하기는 매일반인데 가드 레일은 반쪽신세다.

옛날에는 산 짐승이 무섭고 도로가 험해 이 길을 기피해왔는데 요즘은 강력사건으로 인해 꺼리는 길로 인식되고 있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피반령의 옛 정취를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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