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프롬의 「자유로 부터 탈주」는 너무도 유명한 얘기다. 인간이 무한한 자유를 누리다 보면 이를 다 수용치 못하고 독재자에게 반납한다는 학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정권에서 찾게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무한정 자유를 누리던 독일 국민들이 그 자유를 모두 소화하지 못하고 나치정권에 이를 헌납했다. 주어진 자유가 분에 넘치면 민주의 잔(盞)이 엎어지는 퇴행적 양상을 빚게 되는 것이다.

지방의회는 두말할 것도 없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다. 우리나라 지방의회는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는 하나 5·16쿠데타 이후 폐지됐던점을 감안하면 지난 91년 부활했다 하여도 그리 길지 않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숱한 시행착오와 착근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을 요구한다.

서구에서 2백년 걸려 이룩한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정착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따라서 의회 운영상 큰 하자가 나타나고 지방의원의 자질부족과 함께 도덕 불감증을 동반한 치명적 사건이 발생했다 하여도 의회자체의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은 에릭 프롬의 「자유로 부터 탈주」를 연상케 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도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와 관련, 거액의 금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기야 6명의 의원에게 뇌물수수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뇌물을 건넨 박모의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전대미문의 이러한 사건앞에 할말조차 잃을 정도다. 시민단체, 농민단체, 여성단체및 공무원들이 앞다퉈 도의회를 성토하고 있다. 성토의 목소리 안팎에는 도의회 무용론도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도의회에 대한 지역주민의 배신감과 분노를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지방의회 무용론을 공론화시켜서는 안될 일이라고 본다. 만약 일부의 주장대로 지방의회가 없어진다면 도정, 시·군정의 감시와 견제는 누가 할 것인가. 물론 주민 감사 청구제 등이 있다고는 하나 미주알 고주알 행정기관의 모든 면을 챙길 수는 없는 것이다.

자치단체장은 주민이 뽑고 지방의회가 없다면 지방자치의 두 축중 한 축이 사라지게 되므로 지방자치는 절름발이 수레가 되어 짐을 실을 수도 없고 또 진행할 수도 없게 된다. 이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우는 격이다.

지방의회가 실수를 했다면이를 바로 잡아 나가도록 힘을 쓸 일이지 그로인해 본질 자체를 부정한다면 지방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는 도중에서 고사하고 마는 것이다. 지방의회 무용론의 진원지가 우리 고장이 되어 확산된다면 그건 매우 위험천만하고 불행한 일이다.

「자치능력도 없는데 걷어치워」라는 식의 얘기가 나온다면 주어진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 되고만다. 워낙 민주주의란 고행의 길이다.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해선 충돌과 화해의 미로를 통과해야 하고 자갈밭, 가시밭길도 걸어야 한다.

금품수수로 인해 전국적인 꼴망신을 시켰으나 그래도 우리는 그 험난한 지방자치의 길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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