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장마가 걷히면서 본격적인 피서철이 개막됐다. IMF동안에는 해외여행이 크게 줄고 여름 피서도 그럭저럭 넘겼는데 경기한파의 파고가 물러가는가 싶더니 종전의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벌써 여행사에는 비행기표가 동이 났고 해수욕장과 유원지에는 피서인파가만원사례를 빚고 있다. 경제난이 언제 있었냐는듯 고속도로를 메운 피서 차량의 열기가 무더위를 부채질 한다. 휴가란 무엇인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을 것도 없이 재충전, 그 자체인 것이다. 일상생활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찌든 심신을 추스리는게 휴가의 진정한 의미다.

그런데 휴가의 양상을 보면 충전에 실패하고 오히려 피로감을 누적해오는경우를 흔히 발견하게 된다. 심신을 달래는 피서가 아니라 피서전쟁을 겪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분에 넘는 휴가로 가계의 주름살이 깊어지기 일쑤고 취객의 고성방가에 불면의 밤을 보내기 다반사다.

내가 즐겁다고 해서 남도 즐거운게 아니다. 나의 즐거움이 남에게는 괴로움이 되는 예가 흔히 발견되는데 우리의 의식속엔 그러한 분별력이 별로 없는듯 하다. 이 기간 동안 자연은 또 얼마나 큰 몸살을 앓는가. 바위틈새마다 강냉이알 처럼 박힌 쓰레기더미를 보며 시민의식의 실종에 비애감마저 든다. 흐르는 물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에, 쌀을 씻는 사람에, 방뇨를 하는 사람에, 한마디로 유원지 계곡은 뒤범벅 난장판이다.

소중히 간직해야 할 나만의 시간을 온통 빼앗긴 기분이다. 남이 간다고해서 장바닥같은 전국의 유명한 행락지를 굳이 찾을 필요는 없다. 이름없는 곳이라도 가족단위로 조용히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여름 피서엔 제격이다. 휴가기간중 어딜 갔다 왔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보냈는가가 더 중요하다.

해외나 유명 해수욕장을 다녀왔다고 해서 엄청나게 자랑할 것도 없고 한적한 농촌에서 소일하고 왔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도 하나도 없다. 튜브를 들고 물속에 첨벙 뛰어드는 식의 획일적 휴가문화에서 이제는 개성을 살리는 자기식 휴가가 필요한 것이다.

평소에 미뤄두었던 고전이나 베스트 셀러를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요, 소원했던 일가 친척을 찾아보는 일도 괜찮은 일이다. 문화관광길을 나서는 것도 여름 피서를 유익하게 보내는 방법중의 하나다. 내고장의 문화재를 둘러보고 조상의 숨결을 느껴보며 미래의 삶을 설계해 보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왕짜증 교통에다 바가지 뒤집어 쓰고 가계를 솔찮게 축내는 휴가라면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콩나물 시루같은 수영장보다 샘물을 길어 등멱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들마루에서 수박을 잘라 먹던 여름 풍경이 산업화속으로 사라졌다. 그대신 악다구니를 쓰고 추월경쟁을 일삼고노래방 기기가 찢어지는 살풍경한 여름이 해마다 찾아들고 있다.

조용히 계곡을 찾아 탁족하고 합죽선으로 더위를 쫓던 옛 일을 돌이키며알뜰 피서를 구상해보자.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