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치수정책
답답한 치수정책
  • 조혁연
  • 승인 200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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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학 비평가는 서양인의 빵에 대해 「개인주의」 「정복」 「개척」이라는 설명구를 사용했다. 반면 동양인의 주식인 밥에 대해서는 「가족주의」 「평화」 「정감」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언뜻보면 이분법 안에 대상을 철저히 단순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릴적 우리의 어머니들이 아랫목에 묻어 두었던 그 무엇을 생각하면 『아 그렇구나』를 연발하게 된다. 빵은 식은 것도 먹을 수 있지만 밥은 온기가 있어야 먹을 수 있다. 식은 밥은 정(情)이 식은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추운 겨울 식구가 늦게 들어올 때마다 아랫목 요밑에 묻어뒀던 밥 사발을 하나씩 꺼냈다. 우리의 아버지의 아들, 그리고 형제들은 한 솥밥을 먹는 것으로 한 핏줄을 확인했다.

그런 밥은 들에서 나온다. 태양 에너지가 저축된 벼를 집으로 옮겨놓은 것이 밥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단순히 「곡」(穀)이라 하지않고 「곡기」(穀氣)라고 표현했다. 며칠 안있으면 추석이다.

형제들은 햇곡식으로 차린 밥상 앞에 다시 모여 앉을 것이고, 그에 앞서 조상에게 보살핌에 대한 제사를 올릴 것이다. 그런 들이 올해도 또다시 물에 잠겼다. 경기도 파주시는 벌써 3년째 물난리를, 음성의 한 지역도 한달전 공사한 둑이 다시 터졌다. 이쯤되면 갑갑한 치수 정책에 앞서 조상을 볼 면목이 없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치수는 농업정책의 근본이 된다. 파주의 한 여인이 『이곳에 물난리가 일어나야 우리나라 장마가 다 끝난다』는 말이 두고두고 가슴을 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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