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우리나라에 선을 보인 것은 구한말 쇄국을 풀고 구ㆍ미 여러나라에서 공관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특히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게 된 것은 잠시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피해있던「 아관파천」때의 일이다. 이를 이용해 고종이 마시는 커피에다 독약을 탄자가 노어 통역을 맡았던 김홍륙이다. 고종은 다행히 마시지 않아 화를 면했으나 왕세자이던 순종은 한모금 마신탓에 일생을 그 여독으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고종이 러시아 공관에 있을때 손택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독일 처녀가 있었다. 손택은 러시아 공사 부인의 친척인데 공사가 부임때 따라와 한국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 손택은 고종을 모시는 정성이 한국인 신하들 못지 않았다. 그래서 고종이 기특하게 여겨 상으로 내린 것이 「손택호텔」이라는 이름의 붉은 벽돌집이었다. 당시로는 눈에 띄는 서양식 건물이었는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팔았다.

이후 우리나라 사람 손에 의해 문화인 휴식처로 다방이 문을 연 것은 지난 1923년 예술인들이 주머니를 털어 종로에 개업한 「맥시코」가 처음이다. 10전짜리 커피한잔이면 예술인들은 이 다방에서 낮잠을 자거나 예술론을 펼치며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노란 머리 염색을 한 N 세대는 이제 커피를 들고 계절과 관계없이 반나의 몸으로 뭇사내들에게 눈길을 주며, 커피포트를 안은 속칭 티켓다방 아가씨들은 커피보다는 진한 것(?)을 팔기 위해 스쿠터에 몸을 싣고 달린다. 더욱 변한 것은 자식들 용돈에 인색한 가장들이 티켓비에는 후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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