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UN이 정한 「자원 활동자의 해」이다. 연초부터 경기침체에다 정쟁까지 겹쳐 대다수 사람들이 올해가 이런 해인줄 조차 잘 모르고 있다. 설사 안다고 해도 내 코가 석자이니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들이다.
 서구에서는 「발런티어」라고 부르는 자원 활동자의 수가 엄청나게 많고 이들의 봉사정신은 시민정신의 근간을 이룬다. 이들의 활동은 가히 시민운동의 중심축에 서 있을 정도이며 그 영향력 또한 매우 크다.

 자원활동은 말 그대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행위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에 대한 보수가 없고 이웃 사랑이라는 공익정신을 자연히 담고 있다. 댓가없는 봉사, 그것이 바로 자원활동자들의 캐치프레이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으로 그런 정신이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케하는 버팀목이 되어 왔다. 농경사회 공동체의 덕목인 향약을 보면 어려울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임란당시의 의병, 구한말의 의병 등도 큰 범주에서 보면 자원활동이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베푼 허준 역시 자원봉사자임에 틀림없다.

 구한말,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아펜셀러, 언더우드 등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 땅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한국의 근대화와 민생에 크게 기여했다. 봉사는 결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샘물이 대지를 적시듯 낮은 곳으로 부터 스며드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사회봉사단체가 수도 없이 많다. 그 사회단체들은 나름대로 봉사정신을 표방하며 공익정신 구현에 나서고 있으나 결실은 기대치만큼 신통치 않다.

 봉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데 왜 사회는 그늘 투성이인가. 그것은 사랑의 부족에 있거나 사회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봉사를 하는데 자기 이름 석자를 크게 거명할 것도 아니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요란을 떨며 봉사현장 사진찍기에 바쁜, 생색내기 행렬의 모습을 보면 왠지 떨떠름하다. 또 남이 하니까 체면상 안할 수 없어 면피용으로 나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봉사활동은 요식행사가 아니다. 남이 장에 간다고 우르르 몰려갈 일도 아니다. 자원활동의 요체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작업이다. 닫힌 마음을 열어주고 얼은 마음을 녹여주는 사랑의 실천 행위이다.
 따라서 각종 봉사단체는 그 단체가 추구하는 지표를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행여나 친목 우선으로 성격이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재정중에서 차지하는 봉사비용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이번 기회에 챙겨 봤으면 한다.

 우리의 전통 덕목으로는 매사가 공선사후(公先私後)인데 실제로는 그 반대로 사선공후(私先公後)의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이웃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듯 하다.
 사회주변에는 이름없이 살다가 큰 뜻을 남기고 간 사람들도 많다. 평생 김밥장수를 하며 벌은 돈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은 김밥 할머니의 이야기라든지, 숙박업으로 벌은 전 재산을 대학에 기증하고 떠난 김유례할머니의 이야기 등은 두고 두고 아름답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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