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하면 울부짖고 싶고 아무거나 때려 부수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터질 듯한 가슴의 응어리들을 그림에 쏟았어요.내 자신이 귀먹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을 때가 있어요.귀가 들렸다면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고통도 없지 않았지만 폐쇄된 소리의 공간이 있었기에 한 작업에 몰입, 집중할 수가 있었어요』.지난 23일 타계한 운보 김기창 화백의 독백이다.운보가 한국 화단에 남긴 업적은 지대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청각 장애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예술적 세계를 펼친 예술적 투혼이 아닌 어머니와 아내을 향해 그가 보여준 애절한 사랑이다.경희대 최병식 교수는 「천연기념물이 된 바보」라는 저서에서『여섯살때 청각을 잃은 그가 얻은 또 하나의귀 는 위대한 예술과 사랑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운보만의 귀였다』며 『운보는 베토벤과 고야 처럼 청각장애를 딛고 위대한 예술세계를 창조한 분이며, 인간 승리와 불멸의 사랑이 곁들여진 불꽃같은 일대기를 남긴 주인공』이라고 소개했다.

애제자 심경자 세종대 교수도 『누군가가 노력해서라도 온 세계에 알려야할 거장이라고 생각한다.인물 풍경 동물 화조의 구상작품들과 수묵 채식 등 소재나 재료의 어느 영역에도 구분없이 누구나 흉내낼 수 없는 속필의 강력한 필선과 대담한 구도, 그 속에 담긴 우수와 넘치는 해학의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번역도 없는 노벨미술상이 왜 없는 지 아쉬웠다』고 말했다.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 석자는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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