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은 에밀레 박물관이 조자용 관장과 부인 김선희 여사의 잇딴 타계로 존폐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 여간 안타까운게 아니다.
 지난 83년 개관한 에밀레 박물관은 우리나라 박물관중 민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고 특히 도깨비 기와 등 도깨비 관련 자료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박물관이다.

 뿐만아니라 이곳에서는 상고시대에 열렸던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 국중대회(國中大會)를 1천5백년만에 부활시켜 매년 열어 오던 터였다.
 속리산 정이품송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는 에밀레 박물관은 여러가지 민속 이벤트를 마련하여 국립공원 속리산을 찾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오던 명소였다.
 미 하버드대와 MIT 공대를 졸업한 고 조자용 박사는 전공과 달리 민속학에 조예가 깊었고 그런 식견을 펼치던 곳이 바로 에밀레 박물관이었다.

 이곳은 민속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한국을 이해시키는데에도 큰 몫을 해왔다. 나라 굿인 국중대회가 열릴 때면 그 흥풀이 마당에서 대동 굿 기능보유자인 여무(女巫) 김금화의 굿판이 신명나게 펼쳐지고 참가자들이 직접 떡을 치고 국수를 뽑던 체험 민속의 장이 기억에 새롭다.
 평생 도깨비 연구에 정열을 쏟은 조 박사에게는 어느새 「도깨비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훤칠한 키에 흰 수염을 휘날리던 생전의 그의 모습은 영낙없이 도깨비를 빼다 닮은 익살스런 할아버지였다.

 조 박사의 분신이나 다름없던 에밀레 박물관은 부인마저 세상을 뜬후 문을 굳게 닫고 있다. 김 여사가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은데다 유일한 혈육인 조모씨 마저 귀국 시점을 알 수 없어 박물관의 운영이 난관에 부딪쳐 있다.
 박물관의 수많은 소장품이외에도 박물관 뒷편에 조성한 전통 한옥이 주인을 잃은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문하생이나 보은 지역사회에서 위탁관리하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지만 사립박물관인 만큼 후손의 거취 표명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임의로 운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그 귀중한 민속자료들이 주인을 잃었다고 해서 사장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박물관이란 무릇 공익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한서 위지동이전에는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제천의식이 잘 기록되어 있다. 「삼일철야 남녀음주가무」라는 귀절도 있다. 이러한 제천의식을 어렵사리 부활시켰는데 또 사라질 위기를 맞은 것이다.

 어찌보면 에밀레 박물관의 민화와 제천의식은 우리 민족의 원형질을 확인하는 정신적 고향이다. 현대화, 세계화의 과정에서 파생된 마음의 실향민이 배달겨레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추스릴 수 있는 곳이기도하다.
 경치 좋은 속리산의 한 자락을 깔고 앉아 각박해진 현대인의 심성에 영혼의 샘물을 공급하던 이곳이 그냥 방치돼서야 되겠는가.

 충북도 문화당국과 보은군은 여러 각도에서 에밀레 박물관의 회생방안을 강구해 볼 일이다. 그래야만 고인도 지하에서 그 흥풀이 마당에 흥겨워 하고 생전의 업적에 만족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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