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와 현충일 등 국가적 기념일만 되면 혈육의 묘비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이들의 사진이 신문에 실린다. 4ㆍ19만 해도 벌써 40년전이고 한국전쟁까지 따지자면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옛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구나 싶어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안쓰럽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던 옛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현대사의 비극들은 굳이 그 혈육이 아니더라도 아픔의 기억을 공유한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역시 한으로 묻혀있다.
 화창한 신록의 계절이며, 가정의 달인 5월을 마냥 흥겨워만 할수 없는 이들이 아직 이 땅에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벌써 20년의 시간이 지났으나 5ㆍ18은 여전히 생생하게 아픈 상처로 되살아오는 것이다.
 군부독재에 생명을 걸고 항거했던 80년 뜨거웠던 광주의 5월은 지난 9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올해로 5회째 기념식을 갖고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국가원수인 김대중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했으며 올해는 여야 각당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 행사를 치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올해 기념식은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무산에 반발한 5ㆍ18 관련단체들이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따로 추모식을 갖는 바람에 「제주(祭主) 없는 기념식」이 됐다. 하지만 행사의 온전치 못한 모양새 쯤이야 살아남은 자들이 갖게되는 부끄러움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때, 광주는 외톨이였다. 죽음 보다는 살기를 택했던 언론 때문에 수많은 국민들은 진실을 알 기회를 박탈당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5ㆍ18은 유령처럼 떠도는 소문일 뿐이었다. 비록 많은 젊은이들이 그날을 노래하고 망월동 묘지를 찾았지만 5ㆍ18은 어떤 공식적인 명칭조차 얻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5ㆍ18은 광주민중항쟁으로 자리매김되어 공식적인 기념일도 갖게 됐다. 하지만 쉴새없이 볶아치는, 정보화와 포스트모던,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심난한 담론들이 지배하는 즈음에 찾아온 5ㆍ18은 그저 「지나간 또 하나의 사건」 쯤으로 화석화될 위기에 처해있다.
 여전히 진실은 저 너머 있는데, 성급하게도 망각의 편리에 몸을 맡기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않은 것이다.
 더욱이 어두운 불황의 터널 속에서 너나없이 삶의 의욕을 잃고 절망의 그늘에서 헤매는 요즘 5ㆍ18의 현재적 의미란 더욱 찾기 힘들다. 그러니 민주화와 통일의 대장정을 거치며 인간적 삶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라면서 뿌린 그 많은 피에 우리가 보답하는 것이 고작 이런 절망과 회의 뿐인가 싶어 부끄럽고 참담한 심경을 떨칠수 없다.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5ㆍ18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고 있다. 요지부동으로 전근대적 권력다툼만 되풀이 하는 정치, 여전히 아득해보이기만 하는 통일의 과업, 수많은 이들의 의욕을 박탈하는 비민주적ㆍ비합리적 관행과 법칙, 그리고 공공선을 외면하기만 하는 경제질서 등은 살아남은 자의 치열한 분발을 요구하고 있는 것.
 5ㆍ18이 아직도 진행중인, 그리고 어쩌면 한참 더 진행돼야 할 싸움이 되는 까닭이 여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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