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감독에게는 사람 배를 사시미칼로 푹푹 찌르다가 죽거나 감옥에 갇힌 건달친구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는 시장에서의 지지를 얻는데 큰 힘이 된 듯하다(인터넷 게시판에서 내러티브상의 문제들을 제기할 때마다 「감독이 직접 겪은 일인데요?」라는 답글이 붙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집단창작으로서의 영화적 속성 보다는 거의 자전적 성장소설의 원형에 근접하고 있는, 감독 자신의 체험담 서사화는 영화의 모양새를 비틀고 완성도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선 「친구」의 내용은 전적으로 감독의 기억의 연대기순으로 짜여져있다. 물론 적지않은 윤색과 첨가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실제로 있었거나, 다소 픽션을 가미해도 맥이 유지될만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험자에게는 그 자체로 일관적이었던 행위와 감정의 동선(動線)이, 제3자인 관객에게는 빈구석 많은 내러티브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아무리 실제 인물이라도, 극중 캐릭터로 받아들이게 되는 관객에게는 캐릭터의 명확한 활동영역과 내면상황의 정보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친구 아이가」「친구 사이엔 미안하다고 안하는기다」 등의 언명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동수와 준석, 준석과 상택 그리고 네 친구들간의 관계망에 담긴 내용물을 소상히 알기 힘들다. 또 동수의 2인자 콤플렉스는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미흡하게 다뤄졌고, 20년간 유지돼온 감정선은 당연스레 기정사실화돼있다. 감독에게는 당연한 모든 것들로 인해 관객들은 종종 불편했던 셈인데, 이를 3시간짜리 필름을 2시간내로 단축시킨 탓으로만 돌릴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친구들에 대한 연민을 작정하고 쏟아붓는다. 「도저한 감상주의」를 아예 전략화한 것처럼 보이는 이 과정에서 그는 영화의 핵심적 공간과 구성요소로서의 조직폭력배/폭력의 세계에 대한 시점 정리작업을 생략한다. 이는 그들 공동체일원이었던 상택으로서야 무의미했겠지만, 조직폭력배 세계를 비일상적인 판타지영역으로 받아들이는 관객들에게는 중요한 과정이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이와 관련, 그들의 우정을 증거하는 관찰자로 채택된 나레이터 상택에게 발생하는, 위치와 기능 및 역할과 정서상의 균열도 같은 맥락에서 볼수 있다. 감독의 분신임이 자명한 상택은 패거리 일원이면서도 거리를 유지하는 제3자적 관찰자 기능도 떠맡는다. 이는 넷 중 일반관객의 동일시가 용이한 일반인/중산층/모범생/지식계급의 위치에서 비롯됐지만, 그는 정서와 감정면에서 공동체의 파국을 가장 가슴아파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균열은 불가피하다.
 영화 마지막 준석과의 면회장면에서 눈물로 번들거리던 모습과 격앙된 대사는 이같은 균열을 명확히 드러내는 한편 최종적으로 정리된 입장도 표명한다. 그나마 유지돼왔던 객관적 관찰자 역할을 포기한채 감독의 내심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것. 이같은 감정폭발은, 앞서의 여러 혐의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따라온 이들에겐 당혹감을 안겨준다. 「깡패(갱)영화」가 맺고있는 남성쾌락과의 내밀한 관계에 더해 「우정」「향수」라는 보편적인 휴머니즘적 정서체험도 제몫으로 갖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하기 때문이다. 그들 이야기에 몰입못한 채 「깡패」와 「우정」의 방정식 앞에서 갸웃거리는 관객들의 혼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한편 후반부 깡패영화의 장르적 관습을 적극적으로 취하면서도 장르적 맥락에서 이탈한 점도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통상 완성도 있는 깡패(갱)영화가 사회의 폭력적 본질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적극적/소극적, 명시적/암묵적, 직설적/역설적) 발언해온 점에 비해 「친구」는 사적체험이라는 좁은 공간만을 고집한다. 특히 70년대∼90년대의 시대배경은 사적체험에서 나아가 좀더 무거운 의미들을 건져올리는 거대서사를 만들수도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감독의 배타적인 수용 및 배제의 원칙은 시장에서 열렬한 지지를 얻고있다. 이는 팍팍한 삶에 위안을 구한 대중적 무의식 때문이기도 하고, 진심을 솔직히 토로한 감독의 진정성이 발휘한 힘 때문이기도 할터이다. 그밖에 어떤 원인이 있든간에 꽤 흥미롭고, 또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21세기 벽두 한국영화계의 풍경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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