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윤영재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청주시청사 / 중부매일 DB
청주시청사 / 중부매일 DB

지적 관련 재조사 사업을 하다 보면 지적선 경계 협의에 들어가는 시점부터 전쟁 같은 출장이 이어진다. 출근하면 일단 장화부터 신고 현장에 나가 퇴근시간이 다 돼 사무실로 돌아온다. 경계면에 위치한 양쪽의 토지 소유자는 신경에 칼날이 서 있다. 재산권으로 이어지는 경계선이야말로 그들의 생명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경계를 조정하면서 누구에게도 형평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담당자인 나 역시 신경이 곤두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재조사 현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친절을 만나게 된다. 사소하지만 말이 날 수 있는 여지의 친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할머니가 타오는 커피 한 잔도 여유롭게 마실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작업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마을회관 어머님들이 밥 한술 같이 뜨자고 제의하시는 경우가 있다. 마을 일이라고 추운데 일부러 나오셨는데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토지 소유자가 원하는 경계대로 도면이 나왔다며 주머니에 뭔가를 푹 찔러 넣었나 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무심코 지나갔다가 다른 필지로 이동하는 중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돈이 든 봉투가 들어 있었다. 화들짝 놀라 봉투를 넣어 준 소유자에게 찾아가 돌려줬다.

윤영재 청주시 주무관
윤영재 청주시 주무관

나는 정해진 규칙대로 측량을 통해 경계를 확정 짓고 도면을 그려 넣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수고비를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만 경계가 토지 소유자가 만족하도록 흡족한 결과를 낸 것은 나로서도 기분 좋은 일이므로 더욱 사례를 받을 이유가 없다. 토지 소유자는 여러 번 손사래를 쳤지만 돌려주고 오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만약 별것 아니라고 봉투를 받았다면, 그 이후 현장을 나갈 때마다 누가 돈을 주지 않나 눈치를 살필 것이고, 결국 호의라도 받고 나면 토지 소유자에게 득이 되도록 일처리를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게 고마움을 표하는 표정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마음으로 충분하다. 공무원이 청렴해야 하는 것은 충분조건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다. 그래야 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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