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권」은 도로의 주인인 사람이 자동차에게 빼앗긴 주인 자리를 되찾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헌법에 보장된 법적 개념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제기되고 있는 시민의 중차대한 권리 중 하나가 바로 보행권이다.
 숨을 쉬는 자유, 잠을 자는 자유처럼 너무도 기본적인 생명체의 권리인 보행권이 새삼 많은 노력과 싸움을 통해 쟁취돼야 하는 대상으로 변한 것이 바로 현대사회의 비극이다. 교통 발달을 바탕으로 한 도시화·현대화 과정에서 땅의 주인인 사람이 점차 자동차에게 밀려나버린 것이다.
 이는 주로 도로의 원활한 유통에 초점이 맞춰진 교통정책에서 비롯됐다. 당초 사람의 편의와 신속한 이동을 위해 입안돼야 했던 교통정책이 사람을 중심에 놓고 안전성과 쾌적성을 도모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됐던 것이다.
 보행권의 권리 주체는 모든 시민이지만 특히 이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받는 이들은 어린이와 노약자, 임산부들, 그리고 장애인들이다. 이중 장애인의 경우 일상 생활을 결정적으로 제약당하고 있어 비장애인들이 감수해야 하는 권리 침해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이들은 일명 보행약자로 일컬어지는데, 19세 이하 어린이들이나 65세 이상의 연령층과 임산부, 장애인들이 전체 인구의 36.8%를 차지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들의 보행권 보장은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는 자동차 중심이었던 도시 교통정책을 사람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보행권 확보 운동이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이후 1997년 서울시에서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에 관한 기본조례를 제정하는 등 결실을 맺었지만 여전히 일반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특별히 신체상의 장애가 없는 일반 시민들조차 불편을 호소할 정도이니 장애인들이나 노약자 등 보행약자들의 권리 침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주 청주의 한 시민단체가 마련한 「보행환경 개선·편의 시설 확충을 위한 장애없는 거리 만들기 체험행사」는 보행권에 대한 시민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날 행사 참여자들은 성안길 입구에 횡단 보도가 없어 보행약자들의 성안길 상가 진입시 불편이 초래되고 있으며, 거의 모든 건물에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나 목발, 유모차 등을 이용한 보행약자들의 접근이 극히 불편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보행 환경 개선을 적극 촉구했다.
 보행약자들을 위해서는 차량 위주 정책 때문에 없어진 교차로 횡단보도를 복원하고 보도상 주차를 금지하는 등의 보행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다. 또한 보도 시설물 정비사업과 도심 순환 저상버스의 도입, 보도 단절 지점 보도턱 낮추기 사업과 함께 다중 이용시설의 경사로 설치 등도 병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보행약자들의 보행권 확립을 위한 관련 조례의 제정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청주시가 지난 12일 상당육교를 16년 만에 철거한 것이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일련의 조치 중 첫번째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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