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급기야 속세와의 연을 끊고 수행정진하는 스님들까지 월드컵 대열에 동참했다. 조계종 최대 수행사찰인 해인사 선원에서 하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을 비롯, 전국의 많은 사찰 선원들에서 어제 벌어진 한국과 폴란드 축구경기를 시청했다고 한다.
 이렇듯 모든 물리적·심리적 경계와 구분을 넘어서 화합의 화음을 연출하는 지구촌 대축제에 북한도 빠질 수 없다. 북한의 중앙텔리비전이 월드컵 개막전인 프랑스-세네갈전을 경기 하루 뒤인 지난 1일 밤 녹화중계했으며, 2일 밤에는 아일랜드-카메룬전을 녹화 방영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중앙텔리비전은 지난달 26일 한국과 프랑스간의 친선경기도 31일 밤 녹화방영한 바 있다.
 북한측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경기를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조선중앙텔리비전을 통해 만 하루만에 1시간 정도 방영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한은 월드컵 경기의 경우 평양시 일원을 가시청권으로 하는 문화 프로전문방송인 만수대 TV를 통해 준결승이나 결승 등 주요 장면만을 편집,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 방영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88 서울올림픽 등 남한에서 열리는 국제경기를 다루지 않았으며, 2002 한·일 월드컵 경기와 관련해서도 개막식이 열리기 전까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북한측의 월드컵 경기 방영이 계속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여러 측면에서 자신감을 과시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본뜻이 무엇이든 간에, 평화와 화해의 새 세기를 기약하며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지구촌 축제에 긍정적 의미를 보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 결정 이후 남북한 단일팀 구성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막식 참석 등 한반도 긴장완화와 화해 구축을 위한 다양한 월드컵 시나리오가 기대됐으나 모두 무산돼 아쉬움을 남겼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지구촌 반대쪽 사람도 어깨를 겯고, 한·일 양국이 굳게 양손을 거머쥐었으나 정작 북한만 소외됐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지나친 상업주의로 비난받는 FIFA측도 북한의 월드컵 녹화방영에 관대한 입장이다. FIFA를 대신해 월드컵 방송 중계권을 판매하는 키르히스포트사가 북한측에 어떠한 방송 중계권도 준 적이 없으며, 승인되지 않은 어떠한 중계방송도 묵인하지 않지만 이번 사안은 특별한 상황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특히 키르히사는 이번 사안이, 월드컵의 영향략이 어떻게 모든 종류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로 생각한다면서 북한 시청자들이 축구를 즐기고 어떻게 월드컵이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지를 직접 체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가공할 흡인력으로 서로 다른 계층과 배경, 사상을 가진 이들도 하나로 묶는 놀라운 통합력을 발휘하곤 한다. 북한 주민들이 한국팀을 응원하며 성공적 대회개최를 성원하는 것은 물론 지구촌이 하나되는 축제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진다면 이는 이번 월드컵이 거두어들일 여러 효과 중 단연 으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