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동안 전 국토를 붉게 물들였던 2002 한·일 월드컵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한다. 전세계 한민족들의 피를 끓게 하고 자긍심을 하늘로 솟구치게 했던 한국국가대표팀의 신화 창조도 이제 이쯤에서 마무리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와 무한한 생명력으로 푸른 잔디위를 달렸던 선수들의 선전을 가슴 속에 새기고 싶은 국민들에게 이 이별의 순간은 안타깝기만 하다.
 요코하마 문턱에서 멈추어야 했던 것도 절통하지만 가혹한 일정 때문에 바닥난 체력으로 예까지 온 그들이 한없이 자랑스럽고 고마워 헤어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들 때문에 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한달동안 너무도 행복했기에 차마 이 6월을 떠나 보내기 싫은 것이다.
 그렇지만 열광적 흥분은 사라지고 우리는 다시 삶의 수레바퀴에 몸을 실어야 한다. 이제 축제는 끝나가고, 다시 희로애락의 지리한 파고만이 기다리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축제로부터 일상으로의 내키지 않는 복귀는 만만찮은 후유증을 낳는다.
 29일 대구에서의 터키와 마지막 3,4위전을 남기고 있는 요즘 여기저기서 부적응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한민국」「오~필승 코리아」가 계속 귓전에 울려대는 통에 막상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손이 잡히지 않고, 수험생, 고시생들의 시선은 자주 책이 아닌 허공에 머물곤 한다.
 네남 없이 한 무더기로 어울려 환호하고, 한 점 회의없이 순수의 결정체로 승리를 희구하던 그 경험이 워낙 소중하고 벅찼던 만큼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밍밍하기 그지없는데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있는 삶의 국면으로 재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일시적 부적응은 우리에게 월드컵 4강 신화를 일상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처음으로 맛본 승리의 쾌감과 엄청난 자긍심을 일상의 에너지로 전화시켜서 축제의 열기가 삶의 윤기로 빛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식민통치와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영욕의 역사 속에서 패배의식과 냉소주의의 늪에 빠져있던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다가왔던 승리의 희열을 후유증이라는 헛된 이름으로 망각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월드컵에서 확인했던 것이 민족적 존재가치에 대한 재발견이었다면, 이는 국민 모두의 개별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월드컵은 4년만에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이 한 판의 흐드러진 축제를 위해 지난 반세기를 기다려야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월드컵 4강 신화가 감격적이었다고 해도 일분 일초 중단없이 전진해야 하는 우리 삶의 바퀴를 끝없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국가적 에너지를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축제를 스스로 기획하고 즐기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월드컵 열기를 일상의 에너지로 전화시키고 우리 삶의 축제로 연장하는 것이야말로 4강신화에 부응할 만한 멋진 마무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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