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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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尸童). '장례를 치르거나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 대신 의자에 앉히던 어린아이'다. '시동이 앉은자리'가 '시위(尸位)'다. 신위(神位)나 위패(位牌)가 놓인 자리다. 중국 아주 먼 옛날 장례를 치르거나 제사를 지낼 때 사자(死者)의 혈통을 이은 어린아이를 의자에 앉혀 놓는 풍습이 있었다. 사자의 영혼이 제사상에 진설한 음식을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입을 빌려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려는 신앙에서 비롯됐다.

당시 장례나 제사 때 반드시 시동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동은 별 역할이 없다. 한 마디로 조상의 영혼을 대신해 그저 먹고 마시는 일이 전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는 '~ 주관하다.'로 의미가 확대됐다. 시동이 있어야 장례나 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후 '시위'는 단지 혈통을 이은 후손이라는 명분에 자리를 차지해 진설 음식을 실컷 먹고 마시며 장례나 제사를 형식상 주관할 뿐 무능력해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무위도식(無爲徒食)자를 일컫게 되었다.

차례나 장례 상의 진설 음식을 '소찬(素餐)'이라 했다. '素'는 '갓 짜낸 흰색 비단'을 말한다. 비단이 희기 때문에 '소'는 '희다'는 뜻을 덤으로 얻었다. 소복(素服)이 '흰옷 또는 상복(喪服)'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희다'는 모든 색의 바탕이며 꾸민 데가 없는 수수한(질박:質朴) 상태다. 이런 상태의 '소'는 '음식에 고기나 생선 등 고기를 쓰지 않거나 제사 때 비린 음식을 먹지 않음'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결국 '소찬'은 '고기나 생산이 빠진 자연 그대로의 나물반찬'이 됐다.

시동의 앉은자리, '시위'와 진설 음식, '소찬'이 만나 '시위소찬(尸位素餐)'이란 성어가 탄생했다. 글자대로라면 '시동이 먹고 마시는 제사 또는 장례 음식'이다. 좀 더 의미를 확대해 보자면 별 능력도 없는 시동이 의자에 앉아 남이 잘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형상이다. 시동은 조상의 신령 대신 의자에 앉은 일 이외는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 없이 거저 밥을 먹는 셈이다. 그저 의자에 앉아 폼 잡은 일 밖에 없다.

중국 한나라에 주운(朱雲)이란 신하가 있었다. 그는 새 황제, 성제(成帝)가 등극하자 국록만 축내는 관리를 축출해야 한다고 간언 했다. "오늘날 조정 대신들이 위로는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고 아래로 백성들을 유익하게 못하니 다 공적 없이 녹만 받는 시위소찬자들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이처럼 '시위소찬'은 주어진 업무에 충실하지 않은 채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국록만 받아먹는 자들에 대한 비유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런 행태를 줄여서 시소(尸素) 또는 시록(尸祿)이라 했다. 이런 관리를 '시관(尸官)'이라 했다. 하나라 3대 왕인 태강(太康)과 그 형제 다섯의 '시위' 이야기가 <書經: 五子之歌>에 전해진다. '태강 왕은 왕좌에 올라 줄 곳 놀고 게으름만 피워(太康尸位 以逸豫) 덕을 망쳐(滅厥德) 민심을 잃었다. 낙수로 사냥을 가 100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자(十旬弗反) 한 제후가 아예 귀환을 막았다.' 태강 왕의 동생 다섯이 왕좌를 차지하고서도 무능력해 왕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형, 태강을 원망하며 지은 노래다.우리의 모든 행정기관이 새로운 임기가 시작됐다. 단체장이 바뀌었던 그렇지 않던 그들이 경계해야 할 시대적 대목이 바로 '시위소찬'이다. 물론 중국, 과거 남의 나라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예외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관리를 빗댄 '철밥통', '무사안일', '복지부동'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단체장이나 관리 모두 '시위소찬'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갈수록 선량들이 나서지 않아 관리 발굴이 어려운 실정이다. 국록이 싫어서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만연한 '시위소찬'의 꼴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왜 많은 국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심정을 떨쳐버리지 못할까? 국록을 먹고사는 자들, 답변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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