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9월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사라 이후 가장 강력한 태풍 루사가 전국을 휩쓸었다.
 기상관측 이후 최고치인 8백98mm의 폭우가 쏟아졌던 강릉지방은 아예 도시기능 전반에 결정적 타격을 받았고, 공식 집계된 사망·실종자 수만 2일 오후 4시 현재 1백98명이다. 중간집계만으로도 2천5백여억원의 재산피해에 고속도 2개 노선, 국도 24개 노선, 철도 2개 노선 등 국가 기간 교통망이 단 며칠만에 사상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태풍 루사는 도내에서 영동, 옥천 등 남부지역을 강타했다. 상촌 지역서 최대시우량 59mm를 기록한 집중호우로 영동서 5명이 사망했고 1천2백47세대가 침수됐으며 2천9백6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물론 농경지 침수와 낙과피해, 교통두절, 공공시설 피해도 엄청나다.
 텔리비전이나 신문에서 보여주는 태풍 피해 현장은 참혹 그 자체다. 온통 누런 황톳물과 뻘밭으로 변한 삶의 터전들, 폐허 위에 나뒹구는 과일들은 대자연 위력 앞에 한낱 무기력한 존재일 뿐인 인간의 한계성을 절감케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홍수가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씨앗을 뿌려 풍성한 결실을 거두었던 것처럼 루사의 가공할 공격이 끝나기도 전부터 전국적으로 힘찬 피해복구의 삽질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폐허에는 많은 군병력들이 투입돼 수재민들의 삶의 일터를 복구하고 있다. 경찰과 일선 시·군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도 망연자실한 수재민들의 삶의 의욕을 북돋고 있다. 직접 몸으로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멀리서나마 조금씩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국민들 성원이 있으니 이제 좌절의 자리에 다시금 희망의 싹이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련의 홍수와 태풍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 기타 피해의 원인규명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그 모든 피해들이 정말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던지 아니면 치밀한 준비와 대책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 인재 혹은 관재였는지를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경우에도 경찰청은 산사태나 가옥 붕괴 및 매몰, 하천 급류 등을 사망·실종자 대량발생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 때 바위의 위치와 결, 상태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63도 경사각을 유지토록 한 절개지 규정이 산사태 발생의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또한 면밀한 검토없이 이루어진 하천정비사업이나, 물흐름의 과학적 분석없이 세워진 각종 교각, 혹은 배수시설의 미비가 수많은 저수지, 하천둑의 붕괴 및 범람의 원인은 아니었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이번만 하더라도 루사가 빠져 나가자 여기저기서 인재에 의한 피해를 주장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천재지변이야 불가항력이라지만 인재는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그처럼 뼈아픈 교훈을 번번이 잊었다가 재앙을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더이상 되풀이하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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