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장마와 태풍이 할퀴고 간 들녘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예년에 비해 가을걷이의 풍성함은 덜하겠지만 계절의 순환은 가을 벌판을 또 황금물결로 수놓고 있다.
 지난번 수마를 돌이켜 보면 계절의 감각을 만끽한다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도 일면 들지만 태풍의 상처를 입은 감 고을 영동의 가로수 감나무는 올해도 씨알 굵은 열매를 맺어 수재민의 아픈 마음을 다소나마 달래주고 있다.
 청풍명월 충북도는 가는 곳마다 가로수가 즐비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영동에는 감나무, 보은 대추나무, 청주 플라타너스, 충주 사과나무, 음성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단장하여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말해준다.
 가로수의 이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황량한 산업사회에 실종되기 십상인 심성을 회복시켜주고 탄소동화작용으로 산소를 공급한다. 계절따라 모습을 바꾸는 가로수는 꽃, 나비, 매미 등 곤충의 서식처가 되어 생태계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
 어디 그뿐이랴. 눈덮힌 겨울 벌판에서는 자연적인 교통표지판과 방음막이 되어주고 유실수 가로수에서는 솔찮게 소득도 올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식이다. 또한 영동, 청주 등지의 가로수는 전국대회에서도 으뜸을 찾지했으니 내고장을 홍보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이같은 유실수 가로수 가꾸기 사업은 하루아침에 이뤄진게 아니다. 영동에서 감나무 가로수 심기는 지난 75년 부터 시작됐는데 초창기에는 행인들이 감을 마구 따가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다.
 궁여지책으로 주변상인들이 나서 감나무 관리제를 실시하였다. 이제는 아무도 감나무에 손을 대는 사람이 없다. 감고을 영동은 가로수가 우선 홍보해 준다. 홍시가 밝갛게 물드는 거리를 거니는 가을의 정취는 영동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정감이다.
 6·25가 막 끝날 무렵인 지난 53년, 청주의 플라타너스 가로숲은 강서면장을 지낸바 있는 홍재봉씨에 의해 시작됐다. 청주~조치원간 비포장 도로가에 새끼 손가락 만한 플라타너스를 1천6백 그루나 심었다. 홍씨의 나무가꾸기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이들이 꺾어가고 소장수들이 회초리용으로 꺾어가는 통에 학교를 돌며 부탁을 했고 길목에 지켜서 감시도 했다.
 어렵사리 뿌리를 내린 플라터너스는 반세기가 지나 청주의 명물로 착근했고 청주를 찾는 외지인들은 예외없이 이 가로숲을 칭찬한다.
 사과고을 충주는 태풍을 이기고 익어간 사과가 탐스럽다. 본사는 오는 27일, 사과의 고장 충주에서 「충주 사과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사과나무 밑을 지나고 충주호반을 가르는 이 마라톤은 계절의 정취가 각별하다. 단풍이 손짓하는 산, 물안개 피어 오르는 호수, 그리고 파란 하늘과 빨간 사과는 삼원색이 되어 이곳을 찾은 마라토너와 신비한 자연의 화합을 연출한다.
 충주 등지에서는 이 탐스런 열매를 수확해 불우이웃을 돕는다고 하니 가로수는 「인정의 가교」라는 또하나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시·군마다 특색있는 나무를 선정하여 숫제「가로수 충북」을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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