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 그 자체다.
 세상에 여중생이 미군의 궤도차량에 치어 2명이나 한꺼번에 죽었는데 책임질 사람이, 그리고 잘못한 사람이 없다니 이게 어디 말이 되는가 말이다.
 여기에 주한 미8군 사령관은 이번 무죄평결이 나온 직후 [재판은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됐다]며 오만의 극치를 보여 한국민을 더욱 분노케 했다.
 죽은 자야 말이 없다지만 이해 당사자인 유족들의 분노와 한국민들의 거국적으로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삭이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개정된 SOFA는 형사관할권 분야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가해자 처벌과 함께 피해자를 보호하기에는 아직도 법률상 미흡한 부분이 많으며, 특히 공무 중의 범죄에 대해 일률적으로 미군이 일차적 재판권을 행사토록 규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이번 여중생 사망사고 재판 사건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때문에 앞으로 이와 흡사한 사건과 유사한 평결이 한국영토 내에서 이후 미군에 의해 불합리하게 진행된다 해도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비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가 무죄평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주한미군지위협정을 둘러싼 소파(SOFA) 재개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야권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인 민주당 조차도 소파규정 개선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미국범죄에 대한 우리측 재판관할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마련중이라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재판관할권은 가해자가 가해자를 심판하는 모순적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하루빨리 이양 받아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그런데도 정부당국은 소파가 지난해초 개정작업이 완료된 만큼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개정문제를 제기하는 것 보다는 일단 여러가지 운용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궁색한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군은 과거와 달리 사령관의 공식 사과와 미국병사 2명의 한국검찰 출두, 미군사법원의 취재허용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불합리한 SOFA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에 대한 재판이 미국이 주장하는 소파법에 의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적용되어 진행된다면 한국민의 대미감정은 악화일로를 거듭하게 될 것이고, 종국에는 한미간의 우방의 의미도 물건너 가는 형국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불합리한 소파법으로 인해 한국민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면 우방의 의미는 갈수록 희석될 것이고, 나중에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차제에 정부는 대등한 관계에서 공식 외교채널을 통하여 부시정부에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재판권을 이양받기 위한 합리적 절차를 지금부터 밟아 이땅에 사는 한국민이 단 한사람도 분노로 밤을 지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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