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대통령선거전이 초반부터 뜨겁다. 통상 선거전 종반쯤 선거판세를 굳히거나 뒤집기 위해 조성되던 폭로국면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때문이다.
 초반부터 분위기가 과열되다보니 당연히 위태로운 비방전도 뒤따른다. 각 당 대표나 사무총장, 대변인들이 비수를 들이대며 서로의 약점을 겨냥하는 품이 자못 비장하다. 여기에 철새들의 군무도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는 가위 무리중의 우두머리라 할만한 모 인사가 드디어 화려한 날갯짓을 하며 둥지를 떠났다.
 이러한 초반 분위기는 유권자들에게 적잖은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유권자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한 대결자들의 참신한 한 판 승부를 소망하는데 비해 여전히 분열적 사고에 기반한 네거티브 선거전이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국민들 사이에 만연한 정치무관심, 정치혐오를 극복하고 참정권 행사를 통한 국민통합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21세기 대한민국의 밝은 내일을 기약할 희망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4백여개 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대선유권자연대가 대선후보들의 선거자금 실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각 당 후보들과 맺은 선거자금공개협약을 바탕으로 불법선거운동을 감시하고 회계장부의 실사를 담당함으로써 정치개혁과 깨끗한 선거정착을 위한 커다란 발걸음을 내딘 것이다.
 정당연설회 대신 소규모 거리유세가 활성화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일부 대규모 거리유세 현장에서 동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예전 선거에 비한다면 한결 돈선거의 폐단이 줄었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동원관중 대신 다양한 성과 연령, 직업의 분포가 확연히 드러나는 자발적 청중들이 유세장을 찾는 것이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스스로 지구당을 찾아가 선거운동원으로 등록,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거나 출퇴근 길에 짬짬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홍보하는 자원봉사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자리잡게 된다면 즐겁게 참여하는 정치가 정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또한 품격이 현저히 떨어지는 표현이기는 하나 모 당의 「앵벌이 후보론」도 변화된 유권자들의 정치마인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현실정치를 냉소할 뿐 주권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받던 대학생들의 인식변화 조짐도 흥미롭다. 대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운동으로 서울대 2천6백42명, 연세대 2천2백27명 등이 부재자신고를 마쳤으며 이들 2개 대학과 대구대 등 최소 3개 대학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민주주의의 성패를 좌우할 젊은 층의 투표참여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앞으로 남은 10여일의 선거전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어지러운 흙바람과 매서운 일진광풍이 몰아칠 것만큼은 분명해보인다. 그렇다면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몫은 유권자들에게 있음을 자각하고 냉철한 이성과 비상한 판단력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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