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개인에 대한 음식물 접대 최대한도가 3만원 이하로 정해지면서 고급 음식점의 영업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청주의 유명 한식 전문점에서 기존 저녁메뉴보다 저렴한 '김영란 메뉴'를 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 신동빈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개인에 대한 음식물 접대 최대한도가 3만원 이하로 정해지면서 고급 음식점의 영업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청주의 유명 한식 전문점에서 기존 저녁메뉴보다 저렴한 '김영란 메뉴'를 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 신동빈

[중부매일 사설] 법이 시행된지 3년이 지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있으나 마나한 법이 되버렸다. 수십곳의 중앙부처와 공기업, 자치단체 공직자들이 이 법을 만만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례가 나왔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16년 9월이후 올 4월말까지 1년 7개월간 유관 기관으로부터 부당하게 경비를 지원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온 공직자가 261명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밝혔다. 이들은 기준과 근거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해외출장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중 96명은 자신이 감독할 책임이 있는 피감기관이나 산하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여기에는 국회의원 38명과 보좌진 17명, 지방의원 31명 그리고 상급기관 공직자 11명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란법 시행초기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접대문화를 바꾸었다는 말이 나왔으나 공직자들이 앞장서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공직자 부패의 질긴 악습과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해외출장을 부당하게 지원받은 지자체와 중앙부처, 공기업 면면을 살펴보면 김영란법이 폐기된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을 만큼 광범위했다. 중앙부처 중에는 기획재정부, 국방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산림청 등이, 지자체 중에는 강원도 양구군, 전북 익산시, 경북 성주군, 경남 밀양시·산청군·함안군 등이 포함됐다. 공기업 중에는 재외동포재단, 한국감정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국제협력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서울주택도시공사,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 성남도시개발공사 등이 적발됐다. 사례를 보면 더욱 기가막힌다. 모 중앙부처는 위탁납품업체로부터 매년 관례적으로 공무원 부부동반 해외출장비를 지원받았고, 모 공사의 공직자들은 민간항공사로부터 항공권을 받았다고 한다. 공직사회에 김영란법을 아예 무시하는 행위가 만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들의 부패가 독버섯처럼 번지면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기존의 법령과 제도만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난 2016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이 법은 공직자와 언론사 임직원, 사립학교와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 처벌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이 사회적인 논란끝에 시행되자 우리사회의 투명성을 높힐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감각해졌다. 무엇보다 일부 중앙부처 공무원은 해외출장 부당지원이 관행인듯 하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불법행위가 지자체와 공기업으로 확산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물처럼 촘촘하게 만들어도 법을 위반한 공직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면 공직자 부패는 더욱 활개치게 된다. 김영란법이 중앙부처와 공직자에 의해 무려화 된다면 투명하고 청렴한 사회에 대한 기대는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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