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대통령선거 결과를 놓고 한나라당이 제기한 당선무효소송이 한 바탕 소동극으로 끝날 전망이다. 지난 27일 전국 80개 개표구에 대한 재검표 결과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가 수용의사를 밝힌 것. 선거관련 의혹을 털고 홀가분하게 출발하기를 바란다며 새 정부에 덕담도 건넸고, 국민들에게는 일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도 했다.
 하지만 지난 12월 24일 당선무효 소송 제기 이후 한달여를 끌어온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국민들 심사는 편치가 못하다. 아무리 지지자들의 절망이 깊고, 당 지도부가 대선 패배의 충격을 성숙하게 마무리할 역량이 부족했다고 해도, 당선무효소송에 따른 재검표는 원내 제1당인 거대야당이 취할 옳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대선 패배의 고통을 재확인한 재검표 결과는 세간의 비아냥대로 '한나라당의 자살골'이 되고 말았으니, 28일 제기된 당 지도부 책임론과 함께 앞으로 한나라당은 간단찮은 후유증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소동으로 낭패를 본 것이 한나라당만이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있다. 당 대변인 말처럼 전자개표기의 기계적 오류 없음을 확인한 대가치고는 피해가 너무 큰 것이다.
 일단 재검표에 동원한 노동력과 금전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 훼손이 불가피하다.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규칙에 승복않는 재검표 주장은 군부독재 시대를 거치며 어렵게 정착시킨 절차적 민주주의와, 이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에 상처를 주었다. 이야말로 '인터넷 강국' 자부심에 먹칠했던 지난 주말 '인터넷 대란'에 이어 연타석으로 대외망신을 초래한 셈이 됐다.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의 크고 작은 싸움과 분열을 딛고 통합의 시대를 열기 원했던 국민들 염원이 외면당했던 것도 중차대한 손실이다. 최소한 내년 총선 전까지는 여전히 원내 제1당으로 국정현안을 좌우할 공당이 선거 뒷 수습에 한달여를 소모하는 걸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실망과 당혹감은 깊어가기만 했다.
 그렇다면 누구도 승리의 과실을 따지 못한 이번 재검표 소동을 통해 한나라당은 무거운 숙제를 떠안게 된 셈이다. 성실하게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국민적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한나라당은 이제라도 대선 패배를 진정으로 수용해야 한다. 재검표 수용을 밝히면서도 '납득키 어려운 몇 사례 발견''상당부분의 의혹 해소' 식으로 한 자락 깔고 들어가는 태도는 한나라당이 대선 패배의 원인을 여전히 안에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태도를 고치지 않는다면 서대표가 밝힌 '국정 동반자와 견제자로서의 야당 역할 수행'은 다시한번 립 서비스 수준에 그칠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적확한 현실인식과 성숙한 자신감으로 국정전략을 제시하는 당당한 야당을 원한다. 12.19 이후 한나라당의 모습은 국민이 보고 싶은 거대야당이 아니었다. 국민정당으로의 환골탈태, 그것만이 재검표 소동으로 국민에게 진 빚을 청산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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