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위에서 세상을 정복할 수는 있어도 세상을 다스릴 수는 없다' 초원의 황제 쿠빌라이의 독백이다.유라시아에 걸쳐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했던 그도 통치에 있어서는 칼이 아닌 붓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족(漢族)의 문화를 받아들여 결국 그 문화에 동화되고 말았다. 이점에 있어서는 청(淸)나라도 마찬가지다.
 생활 문화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육성의 대상이다. 자국의 문화가 빈약하면 칼로 정복을 하고도 어쩔 수 없이 피정복자의 문화를 차용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날 생활문화를 통치의 대상으로 삼으려다 전 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종종있는데 비근한 예가 '장발단속'이었다. 구한말 단발령이 내렸을때도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하면서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털은 자르지 못하겠다'고 이 땅의 많은 선비들은 항거했다.
 그런데 유신치하에서는 반대로 장발을 단속했다. 경찰의 단속을 피해 골목길로 도망다니던 기억을 '장발세대'들은 갖고 있다. 도망다니다 붙잡히면 앞머리에 고속도로가 나곤 했지만 그래도 장발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후에 장발단속이 없어지니까 장발도 덩달아 꼬리를 감췄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도 '아버지의 업적중 잘못된 것은 장발단속이었다'고 고백했다. 뿐만아니라 이때에는 미니 스커트도 단속대상이었다. 풍기를 문란케한다해서 무릎위 몇 센치로 한정하고 출근 길에서 경찰관이 아가씨의 스커트 길이를 자로 재는 진풍경도 곳곳서 연출되었었다.
 분식, 혼식을 장려한다고 담임 선생이 일일히 아이들 도시락 검사를 했으나 영악한 아이들은 쌀밥은 속에 숨기고 보리밥으로 겉을 포장했다.
 생활문화란 사회의 덕목으로 재단하여 좋은 것은 권장하고 악습은 버리는 것이지 법규로 강제 이행시킬 성질이 아니다. 노무현 당선자의 문화 공약은 거의 없다. 아쉽지만 그냥 지방분권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지방분권에 앞서 지방문화, 그리고 문화의 이같은 속성을 십분 간파한후 견실한 문화정책을 펴나가길 바란다. 지방문화는 지방분권의 요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방분권이 어려웠던 것은 바로 문화분권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문화 공룡이 전국을 수직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지방문화는 자생력을 얻지 못하고 거의가 서울 문화권에 편입, 흡수되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서울과 지방문화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 관계에서 부단한 쌍방 통행을 시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서울과 지방간의 문화교류 형태는 일방통행만을 추구해왔다. 문화의 물결 또한 강한쪽에서 약한 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급의 중앙문화는 문화권력을 형성하며 일방적으로 지방으로 전파되었다. 언제 지방문화가 서울 쪽으로 흘러간 적이 있었던가. 문화는 끊임없이 흐르고 교류를 시도한다. 서울과 지방간에 문화의 혈전증을 앓아온 것은 언제나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이다.
 그 지방의 독특한 문화권을 설정하고 이웃과 교류할때 지방분권은 착근되는 것이다. 지방분권의 전제조건은 바로 지방문화 분권에 있다. 지방문화의 토양을 척박한 채로 남겨두고 중앙의 권력적 요소만 단순히 분배한다면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다.
 자생적이고 자율적인 지방문화상을 먼저 획득해야 건강한 지방분권이 이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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