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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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중부시론 한병선] 사랑과 전쟁을 제외하고 세상은 늘 공정문제를 놓고 다툼을 벌인다. 교육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균등의 문제는 대표적인 교육의 논쟁거리다. 최근 자사고(자율형사립고) 때문에 일반계 고교가 슬럼화 되고 있다는 주장도 그 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일반계 고등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점이다. 이 논리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일반고들 간의 학업성취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반고 사이에서도 도농 간, 지역 간의 학력 격차가 매우 크게 난다. 자사고를 없애고 일반고 화대정책이 대학입시 서열화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말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다.

#자사고가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인가

모든 교육은 교육과정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활동들에 대한 평가결과도 학교 서열화에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 활동은 단순히 대학 입시성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 있는 평가라는 점이다. 이런 결과는 특정 학교의 긍정적 이미지, 혹은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나아가 학교의 독특한 학풍과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붕어빵 교육'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붕어빵 교육이란 똑같은 틀 안에서 똑같은 빵을 만들어내듯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책은 모든 학교를 붕어빵 같은 똑같은 틀에 넣겠다는 발상이나 마찬가지다. 동질적 집단일수록 교수학습의 효과가 좋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보자. 미분적분을 능숙하게 하는 학생과 1/2+2/3를 3/5으로 답하는 학생이 섞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수업목표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겠는가. 믿지 못하겠지만 현재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 갈수록 어려운 수학과 과학과목을 기피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생활지도도 문제다. 일부의 주장처럼 학습의 문제는 배움 중심의 수업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미 사회적 숙제가 되어버린 왕따문제, 학교폭력과 같은 생활지도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원하지 않는 학교,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감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이런 요인은 학교에서 생활지도를 어렵게 만드는 현실적인 요소 중의 하나다. 만일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교육현장에서 신주단지 모시듯 중요하게 여기는 '깨진 유리창' 이론은 폐기 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 이론은 모든 생활지도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포용적 지도보다는 문제 학생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준거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같은 공간에서 교수학습은 괜찮고 생활지도는 분리해야 한다는 이 '상반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선호적 기회균등' 중요

문제는 또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와 선호, 사회·문화적 욕구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복합적인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사고를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다. 일반고 슬럼화의 근본적 해법은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특성화와 다양화를 병행해 가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은 과학고, 체육고, 실업고, 대안 학교들을 만들어 기회의 폭을 더 넓혀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선호적 기회균등의 보장이다.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모든 학교를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단선적인 시각으로는 슬럼화 되어가는 일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처방이 되지 못한다. 지금의 문제는 서열화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과 서열을 나누는 그 기준이 하나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궁극적으로는 투 트랙(two track), 즉 '강제적 기회균등'을 기반으로 하는 '공립중심의 평준화'와 '선호적 기회균등'을 보장할 수 있는 '선발 시스템'이 같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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