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사막으로 간 이유는? 물음표에 대한 해답은 다소 엉뚱하다. 진주같은 언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고행을 통한 득도에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대륙의 황사 바람을 헤치고, 고비사막의 모래바람과 몽고의 초원을 가로지르며 한 무명시인이 맥주를 팔고 있다.
 정대기. 그는 한국 시단에서도 잘 모르는 이름없는 시인이다. 그러나 외몽고 울란바토르에서는 그를 상당한 시인으로 인정한다. 그의 시집은 외몽고에서 출간되었고 그의 시어들은 몽고의 유행가로 작곡되어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불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외몽고에 문학상도 제정하였다.
 맥주통과 시집을 함께 가지고 다니는 기이한(?) 행상(行商)모습에 궁금증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장사나 하면 됐지 왠 시는...'이런 시니컬한 질문에 그는 문화와 경제의 2인3각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간에 문화를 떠난 상거래는 실패하기가 십상이라는 지론이다.
 그의 장사 논리와 방법론은 좀 특이하다. 몇날 며칠 현지에 묵는 동안 중국인 몽고인과 상거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않고 그 나라의 역사문화, 고전, 시 등 문화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는 왠만한 중국고전을 다 읽었다. 이백, 두보, 소환의 시 몇편쯤도 외운다.
 이렇게 하여 대화가 무륵익을 즈음 그는 본론을 슬며시 꺼낸다. 상거래는 물론 O K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소르망이 말한 '문화의 이미지'를 그는 원용한 것이다.
 매사에 급할것 없다는 만만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만나자마자 대뜸 상거래에 대한 본론을 꺼내면 성사가 매우 힘들다. 이때 문화는 경제행위를 보필하는 방법론이 된다. 상대방의 문화를 잘 알고 이해해 주는데 싫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문화를 앞세우며 사막으로 가는 시인. 그에게는 우리의 시와 문화가 더없이 큰 무기다. 문화의 전쟁시대에 그는 시어(詩語)의 칼날을 벼리며 용감하게도 타국의 문화로 침입한다. 여기에서는 문명의 충돌이 아닌 문명의 융합 현상이 나타나고 그 결과 경제적 소득을 솔찮게 올리고 있다.
 '직업을 사랑하는 자는 흥한다' A. 토인비의 말처럼 그는 직업을 사랑하고 또 시도 사랑한다. 그가 사업에 성공하는 근본적 이유는 엉뚱하게도 '시 사랑'에 있다.
 '기다리지 않는 곳으로 / 느낌없는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 // 계절의 유희 / 비 맞은 수채화 / 스산한 바람 // 초겨울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간다...(중략) / 영하 삼 사십을 오르내리는 냉혈한 초원 / 봄날 찾아 달린다 / 바이칼 호수의 넘쳐 흐르는 물줄기처럼 / 시베리아 바람타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 초원의 봄을 찾아간다' (초원으로 떠난 남자)
 모래바람을 뚫고, 초원을 내닫는 대상(大商)의 기개가 시어로 녹아 흐른다. 낙타 위에 맥주와 시어를 함께 싣고 사막으로 가는 시인. 오아시스가 없으면 시어의 샘물을 사막 한 가운데 가득 부어 문화의 오아시스를 만들어 내고 거기서 이질적 문화를 슬쩍 접목시킨다. 문화의 가지에 열리는 경제의 열매, 무명시인은 그 이치를 몸으로 터득하며 오늘도 사막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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