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대한 미·영군의 공세가 날로 강화되면서 쌍방간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사일로 폭삭 주저앉은 민간 가옥과,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죽었거나 팔 다리가 잘려나간 어린이 등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극이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세계인들이 야만의 시대 도래를 개탄하면서 전쟁반대의 외침을 높이고 있는 와중에 실로 우려할 만한 현상들이 목격되고 있다. 이라크 민중들이 당하고 있는 비극을 마치 한 편의 흥미진진한 영화나 게임을 관람하듯 '즐기는 듯한' 태도들마저 일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특히 현실인지력이 떨어지는 어린이와 청소년층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게임을 즐기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방송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공습상황을 보면서 현실을 가상세계로 착각, 다양한 신무기를 갖고 전략운용하는 인터넷 게임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개시 이후 일반 게임물의 판매에 비해 전쟁관련 게임물의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PC방에서도 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전쟁을 소재로 한 인터넷 게임을 부쩍 즐기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유린되는 전쟁의 참혹함이 한낱 흥미거리로 전락하게 된 것은 최근의 전쟁보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특히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 전황을 '보다 생생하게' 전한다는 방송매체가 끼치는 영향력은 실로 심각한 수준이다.
 가상 스튜디오 혹은 매직 스튜디오 등에서 현란한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활용한 영상자료 화면들은 성인 시청자들에게도 이번 공격을 영화나 가상게임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과학기술을 동원, 디지털전을 추구하는 세계 최대 군사대국인 미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발휘하는 놀라운 성능과 가공할 위력 앞에서 전쟁의 비인간성과 이라크 공격의 부당성 같은 가치판단이 끼여들 틈은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시청자들은 화려한 무기쇼를 둘러보는 구경꾼이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학자들은 텔리비전을 통해 더 많이 알수록 리얼리티 TV쇼처럼 느껴진다며 어린이들이 텔리비전을 보지 않게 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전쟁보도가 전투의 양 당사자를 균형있게 다루지 않고 미국편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최근 전황 및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데 있어 카타르의 민영방송 알 자지라의 위상이 CNN을 압도하는 상황이나 여전히 국내 방송들은 CNN에만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공격 초기 후세인 사망설, 이라크군 대규모 투항설 등 잇단 오보에 이어 최근 이라크의 우라늄 수입 문건과 화학무기 공장 보도 등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CNN이 미국의 선전전의 도구화되고 있다는 비난여론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속보성·선정성을 바탕한 일방적 정보전달은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쟁에 대한 위험한 왜곡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마땅히 시정돼야만 한다. 더불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균형있게 파악하고 판단하게 하는 평화교육이 각 가정과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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