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범죄와 비리로 사회가 건전성을 잃고 기우뚱할 것 같아도 제 모습을 그런대로 유지하는 것은 밝은 사람, 맑은 마음이 사회 곳곳에서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 연기군에 사는 박무희씨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18년전에 체납된 전화요금을 기어히 갚은 것이다. KT 조치원지점을 찾은 박씨는 빛바랜 전화요금 납입 청구서와 체납요금 129만 3천 8백원을 들고왔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어서 자체 결손처분한 전화요금임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이를 갚았다. 창구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음의 빚'을 청산한 것이다.
 당국에서는 여러가지 세금과 공공요금 체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체납액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급기야 지방자치단체 살림살이 마저 위협할 지경이다. 수없는 독촉에는 불구하고 나몰라라하면서 차일피일 납부를 미루는 불량 납세자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체신 공무원을 지낸바 있는 박씨는 공공요금의 체납이 얼마나 행정당국의 목을 죄는가를 공무원 생활을 하며 체득했고 양심에 찔려 당국을 상대로 고해 성사를 한 것이다. 자체 결손처분이라는 면죄부를 부여했음에도 끝까지 빚을 갚는 박씨의 정신은 많은 체납자들에게 사표(師表)가 된다.
 사회를 밝고 맑게 하는 사람들은 비단 박씨 뿐만이 아니다. 청소년기에 자전거 한 대를 훔친 죄책감 때문에 노년에 이르러 자전거 수백대 값을 주인을 찾아 돌려준 사람도 있다.
 수십억, 수백억대의 재산을 대학 장학금으로 내놓고 홀연히 떠난 김밥 할머니에, 자신의 피를 나누어 주는 헌혈자에, 부랑아들을 친자식처럼 기르는 봉사자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익명의 기탁자에, 우리는 시시때때로 감동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보아도 자신이 했던 좋은 일은 잊어버리기 일쑤이며 반대로 잊고 싶은 나쁜 기억은 생생하게 남는다고 한다. 빚이란 어떤 형태이든 잊고 싶다고 마음대로 잊어지는게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교언영색으로 상대방을 속이고 갖은 첨언으로 출세를 하려는 염량세태에 박씨의 책무감은 오래오래 청량감을 더해준다.
 지자체 창고에는 체납차량 번호판이 수북히 쌓여 있다. 체납자의 어려운 사정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금이 자꾸 쌓이면 효율적인 시 행정을 펴나갈 수 없다는 점도 간파해야 한다.
 수도, 전기, 전화, 도시가스 등은 세금이 아니라 사용료에 해당한다. 많이 쓰면 많이 나오고 적게 쓰면 적게 나오는 것이 상식이다. 혹간 사용료 책정에 과오가 발생하는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상식선에서 적용된다. 그럼에도 이런 류의 공공료금 산정을 둘러싸고 하루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자치단체의 근본정신은 위민정신에 있다. 모름지기 시민을 위한 공익정신으로 행정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상응하는 시민들의 책임감도 작용해야 제대로 시정(市政)을 펴나갈 수 있다. 쌍방간의 신뢰와 사랑이 합쳐질때 이 세상은 더 밝고 맑아지는 것이다.
 마음의 빚을 훌훌 털고 일어서는 박씨의 마음이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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