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과 '어버이 날'이 우연히 겹친 날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한데 만나고 전통적 한국문화가 보태지면서 숙성된 특별한 날이다.
 엄밀히 따지면 외국(인도, 미국)에서 들어온 성자(聖者)와 효심의 날이지만 2천5백여년과 1백년의 역사 속에 두 날은 한국적인 축제로 토착화되었다.
 이차돈의 순교와 조선말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에서 보듯 종교와 문화는 이처럼 충돌과 융합을 거듭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토착문화와 외래문화의 갈등은 필연적이나 그 과정을 겪은 연후엔 삼투압처럼 생활속으로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고타마 시달타는 최초의 가출 청소년이다. 오늘날 '가출'하면 대뜸 청소년 비행(非行)이 연상되지만 시달타는 이와는 정반대로 깨우침을 얻기위해 가출하였다. 카피라 성의 태자로 태어난 몸이 온갖 부귀영화를 내던졌다.
 문화재에서 일컫는 '반가사유상'은 쉽게 말해서 '태자 고민상'이다. 인간의 생노병사란 무엇인가,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화려한 왕궁 생활을 청산하고 가출하여 온갖 고행끝에 비로소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란 범어로 '샤카무니'즉 샤카족의 성인(聖人)을 일컫는 말이다.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동산, 성도(成道)를 한 부다가야, 최초로 설법을 한 마가다야, 열반을 한 쿠시나가라는 불교의 4대 성지로 꼽힌다.
 어버이 날은 다국적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탄생한 기념일이다. 사순절의 첫 날부터 네째주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의 풍습과 1910년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것에서 비롯되었다.
 5월 둘째주 일요일에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죽은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았는데 이 풍습이 한국으로 건너와 1956년, '어머니 날'로 시작되었다가 1973년 부터는 부모를 포괄하는 '어버이 날'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가슴팎이 닳고 손마디가 굵어진 어버이의 은혜를 갚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의 은혜를 10분의 1만 갚아도 효자라는 것이다. 충효사상이 뚜렷한 조선시대에도 '충'보다 '효'를 더 큰 덕목으로 쳤다.
 어버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이다. 어버이 날 아침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봉투 하나 불쑥 내밀었다고 해서 할 일을 다한 것은 아니다. 어버이 날을 무슨 요식 행사로만 인식한다면 서운함만 가중시킬 뿐이다.
 현대인들은 너 나 할 것없이 욕망의 잔을 가득 채우려 든다. 잔에 술을 가득 부으면 넘치기 마련이요,더 부을 공간이 없다. 어느정도 잔을 비워두어야 그 안에 물이든, 술이든 부을게 아닌가.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무소유의 철학은 바로 잔을 비워두는 일이다. 호수에 물이 가득차면 홍수가 나는 법이다. 인 풋과 아웃 풋이 조화를 이뤄야 만물은 안정감을 갖게 되는데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인 풋만을 고집한다.
 꽃이 피었다 지는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열매가 꽃의 고마움을 모른다면 수확은 빈약할 수 밖에 없다. 부처님 오신날과 어버이 날을 동시에 맞으면서 욕심의 잔을 과감히 덜어 버리고 그 안에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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