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삼국시대 집모양토기 / 뉴시스
삼국시대 집모양토기 / 뉴시스

[중부매일 문화칼럼 이명훈] 신라시대 보물을 볼 수 있는 경주박물관에서 가야시대의 어느 토기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집 모양의 토기인데 단층이 아니었다. 원두막과 비슷했고 이층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층에 해당되는 곳에 기둥들이 있고 이층엔 실내 공간이 있다. 이층집으로 여겨지자 가야 사회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단층 가옥들로 구성되었으려니 여겼는데 자그마한 토기 하나로 인해 그 선입견이 깨지며 전혀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었다.

그 가형(家形) 토기를 최근에 사진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필로티 구조에 눈을 떠서인지 이층집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인 문화해설사에게 의견을 구했다. "동남아 가옥이 떠오르지 않나요? 맹수 등등 인간에 위협적인 요소를 피해 나무 위나 기둥을 세워 높게 짓는 집"

색다른 흥분이 일었다. 이층집이라는 상상에 의심이 생긴 터에 또다른 대지로 전문가가 터억 밀어버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남아시아의 가옥들과 비슷해 보였다. 가야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다. 가야 시조 김수로가 흉노족이라는 말이 돈지 오래되었다. 왕비 허황옥에 대해 인도에서 왔다는 설, 그녀가 떠나온 아유타가 인도가 아니라 중국의 보주라는 설. 아유타가 태국이라는 설도 있다. 인도나 태국 관련은 가야의 가형 토기와 동남아 가옥의 연관성에 힘을 실어 준다. 그러나 전문가인 그녀도 학문적 근거까진 내놓지 못했다. 나는 참여하고 있는 역사 모임에 이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고구려엔 부경이란 게 있어요. 창고지요. 그것도 이층이예요"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 벽화엔 이층 다락집이 그려 있지요." 뒤엣 말은 고구려를 전공한 박사의 말이었다. 나는 되물었다. "그러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이 4국 모두에 이층집도 있단 말이 성립되나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요."

경북 경주에 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이나 충남 부여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은 각기 신라, 백제의 탑이다. 사찰과 왕궁은 재현된 이미지로 보면 근거가 있는 건지 이층 건물도 보인다. 이처럼 단층 이상을 지을 수 있는 기술과 제작이 확보되었다고 본다면 집을 예외로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난 모임에서 돌아와 사진 속의 가야의 가형토기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창고인지, 필로티 구조인지, 고구려 고분 벽화 속의 이층 다락집처럼 이층집인지, 동남아의 가옥과 연관성이 있든 없든 그런 형태의 집인지...이런 호기심들 역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가야를 포함한 당시의 사국 시대는 지금 우리 사회의 바탕이다.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것이 낫고 잘못 알기 보단 적어도 사실에 근접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아득한 시대에 가야로부터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이층집이 섞여 있었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그 시대는 무척 풍요로와진다. 의외로 선진화된 건축기술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명훈 소설가
이명훈 소설가

신분에 따라 집 구조가 다를수도 있고 이층집과 단층집 간의 갈등도 있었을 것이며 그에 따른 사회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 양가 간에 혼인 문제가 불거진다면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했을 것이며 그런 면면은 그 시대를 바라보는 훌륭한 창(窓)이 된다. 이층에 밥상을 들고 오르내렸을 며느리는 무릎 관절에 적신호가 빨리 와 그런 이야기꽃도 가야의 우물터 공기를 물들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를 그리는 영화나 소설,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창작물에도 색다른 자극이 될 것이다. 가야의 가형 토기 하나만 하더라도 심연의 바다로 나아가는 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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