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품은 뜻은 무궁하리라. 산은 생겨난 그 때로부터 억천만년, 생겨난 모습 그대로 높고 크고 무겁고 또 깊어. 말로 다할 수 없는 뜻을 품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의 거울에 비추이는 산의 말 없는 그림자일 것이다.<洪鍾仁/ 山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 우리는 그 품은 뜻이 무궁하면서도 좀처럼 말이 없는 산을 오르며 온갖 나무와 바위 그리고 골짜기를 흐르는 맑은 물과 함께 호연지기를 다지며 삶의 활력소를 찾기도 한다.
 산을 산답게 하는것 중에 하나가 바위일 것이다.
 이세상 모든 것이 움직이고 살아가고 죽어 없어지건만, 오직 바위만은 그 속에 무서운 생명을 간직한 채 자연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바위의 무표정한 얼굴엔 무수한 세월의 역사가 이끼로 살아나며 또다시 무수한 세월을 이제까지 살아왔듯이 살아가려는 굳센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용바위, 원바위, 수리바위 등 바위들은 형상이나 보이지 않는 효험 등에 따라 각각의 제 이름을 갖고 있다.
 「호암사에는 정사암(政事巖)이란 바위가 있다. 이는, 나라에서 장차 재상을 뽑을 때에 후보 3∼4명의 이름을 상자에 넣고 봉해서 바위 위에 두었다가 얼마 후에 열어 보고 그 이름 위에 인이 찍혀 있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다. 그런 까닭에 정사암이라 했다.<一然/ 삼국유사>」
 재상을 뽑은 바위의 효험이라니.
 바위와 함께 어우러진 늘 푸른 소나무는 가히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천만겁 긴긴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며 산 정상에 누워있는 범바위의 한 가운데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절개를 외치듯 서 있는 소나무는 산을 오르는 모두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깍아 자른듯한 바위의 가슴을 용트림하듯 감싸고 서 있는 수백년은 된듯한 소나무는 생명의 경이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십년 전 송진을 채취했던 아픈 상처를 가슴에 안고 피맺힌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는 또 산을 오른 모든이들에게 굳센 삶의 의지를 가르친다.
 소나무여! 이 세상에 생겨날 젠 큰 뜻이 있었으리. 사시장춘 푸르러서 한겨울도 몰랐어라. 사랑과 은혜 흠뻑 받아 뭇 나무 중에서도 뛰어났거니. 대궐 명당 낡아서 무너질 때엔. 긴 들보 큰 기둥으로 종실을 떠받들고. 섬 오랑캐 왜적들이 달려들 때엔. 네 몸으로 큰 배나 거북선 만들어 선봉을 꺾었니라.<정약용/ 蟲食松>
 요즘 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늘고 있다.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8일 북한산을 올랐다고 한다. 바위와 소나무가 절경인 북한산을 오르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주군 이었던 DJ의 건강을, 아니면 대북비밀송금 의혹의 특검을….
 박 전실장은 이날 일행과 헤어지며 『오는 11일 다시 산에 가자』고 말하곤 웃으며 『내가 계속 산에 다닐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전실장이 다시 산에 갈 수 있을지는 아마도 천만겁 긴긴 세월 북한산을 지켜온 바위와 소나무가 가르켜 줄 것 같다. 산은 말이 없다고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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