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톡톡톡] 충주의 폭염 속 여름나기 천태만상

가뭄으로 물이 거의 말라버린 충주 송계 계곡 하류 모습

[중부매일 정구철 기자]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살인더위'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대한민국을 달구면서 무더위를 일컫는 말도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저 덥다는 말만으로는 표현이 힘들 정도의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곳곳에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예 생활패턴까지 바꾼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폭염과 맞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은 이번 여름의 폭염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말이다. 무더위 속 여름나기에 힘겨운 사람들의 천태만상을 취재했다.  / 편집자

충주시는 지난달 15일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은 이후 현재까지 무려 한달 가까이 폭염경보가 지속되고 있다.

제천이나 단양 음성 등 인근지역도 마찬가지다.

올 여름 한반도 전체가 폭염 속에 신음하고 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입추가 지났지만 이제 절기는 별 의미조차 없어졌다. 충주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성서동 '차 없는 거리'와 신연수동 거리도 땡볕이 내려쬐는 한낮에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충주시가 노약자들을 위해 로터리 등 거리 곳곳에 간이 햇볕가림막을 설치해 놓았지만 찜통더위에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대신 대형마트나 영화관 등 냉방이 잘돼 있는 실내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저녁시간에는 아예 더위를 피해 대형마트로 쇼핑을 가거나 심야영화관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폭염에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충주시 성서동 '차 없는 거리'의 한낮 모습

음식점도 희비가 엇갈린다.

빙수판매점이나 냉면, 막국수, 콩국수 등 여름철메뉴를 취급하는 식당은 손님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먹을 수 있고 염소탕과 삼계탕 등 건강식을 파는 식당도 이열치열에 나서는 사람들로 연일 만원이다. 그러나 불을 피우면서 먹어야 하는 찌개류나 고기구이식당 등은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기록적인 폭염에 심한 가뭄까지 장기간 겹치면서 상수원이 부족한 일부 산간오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식수가 부족한 일부 산간지역은 자치단체가 급수차를 이용해 식수 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무더위에 샤워조차 제대로 못하는 등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올 여름 더위는 여름휴가의 패턴마저 바꿔놓고 있다.

휴가철이지만 워낙 날씨가 찌는데다 가뭄으로 계곡물까지 마르다 보니 대표적인 여름 휴가지인 송계 등 충주지역 인근 계곡은 한산한 편이다. 계곡물이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몇군데를 제외하고는 휴가철이라고 느끼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았지만 몇몇 휴가객들만이 찾은 채 한산한 송계의 모습

월악산국립공원 사무소에 따르면 올해 7월에 휴가철에 송계계곡을 찾은 피서객은 4만9천51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만2천776명보다 3천265명이 줄었다.

폭염이 워낙 오래 지속되다 보니 올 여름 휴가철에는 바다나 계곡을 찾는 대신, 수영장이 있는 호텔이나 대형 물놀이시설이 있는 콘도 등을 피서지로 택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보도다.

그나마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편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이번 여름이 생지옥이다.

일하는 내내 소금과 생수를 입에 달고 있지만 아예 땀으로 목욕을 하는 정도다

사정이 나은 일부 건설현장은 얼음기계까지 갖다 놓은 곳도 있지만 더위를 이기는데는 역부족이다.

그나마 이같은 일자리라도 얻는 사람들은 다행이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축 쳐진 어깨로 되돌아 가야한다. 폭염에 생활고까지 겹쳐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들에게 휴가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서도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에 나서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달 31일부터 충주종합운동장에서는 복싱 청소년 국가대표 후보 선수단이 구슬땀을 흘리며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

오는 19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지훈련에는 100여 명의 선수와 코치가 참여하고 있다. 체력훈련과 실전훈련 등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 선수들은 찜통더위도 아랑곳 없다.
 

30일 충북 충주시 탄금호 조정경기장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둔 카누 드래곤보트 남북단일팀이 폭염 속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다. 훈련을 마친 북한 선수들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18.07.30  / 뉴시스
30일 충북 충주시 탄금호 조정경기장에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둔 카누 드래곤보트 남북단일팀이 폭염 속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다. 훈련을 마친 북한 선수들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2018.07.30 / 뉴시스

아시안게임에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하는 조정과 카누 드래곤보트 선수들도 충주 탄금호국제조정경기장에서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야외에서 훈련해야 하는 선수들은 가능하면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한낮은 피해 훈련에 임하고 있지만 메달을 향한 집념은 더위도 잊게만든다.

올 여름 농업용 비닐하우스안의 상황은 상상조차 힘들다. 시설채소 농민들은 "한낮에 하우스에 들어가는 건 말 그대로 자살행위"라고 말한다.

농민들은 더위와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오는 18일 충주시 대소원면에서 열릴 예정이던 '봉숭아꽃잔치'가 전격 취소됐다. 폭염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상황에서 농민의 시름을 지나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복숭아의 경우, 낙과가 심한데다 그나마 매달려있는 과일도 화상을 입고 물러져 상품성이 떨어지기 일쑤다.

이처럼 폭염으로 수확량이 적다 보니 농산물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최근 들어 수박 한통에 3만 원 가까이 올라가고 배추 한포기에 7천원에 육박하는 등 과일과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주부들의 장바구니마저 폭염으로 시름한다.

폭염과 가뭄이 이처럼 심각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태풍을 기다리고 있다.

태풍이 비를 몰고오면 가뭄이 해갈되고 더위도 한풀 꺽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제14호 태풍 야기가 한반도로 올라오지 않고 중국 상하이에서 내륙으로 진출한다는 소식이다.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제천 백운면의 한 과수원에서 뿌리째 캐낸 과수나무들을 땅에 매몰하는 방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충북도 제공<br>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제천 백운면의 한 과수원에서 뿌리째 캐낸 과수나무들을 땅에 매몰하는 방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충북도 제공

이런 가운데 폭염으로 한숨을 돌린 사람들도 있다.

제천시와 충주시 등 충북도내 북부지역 사과 과수원을 휩쓴 화상병이 발생 2개월여 만에 사실상 종식됐다.

지난달 25일 충주 사과 농장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추가 발생되지 않았다. 

무더위가 화상병을 소멸시킨 것이다.

이처럼 올 여름 폭염은 희비를 갈라놓으며 우리 생활의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더위를 피할 여유조차 없이 이겨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올 여름은 아주 가혹한 계절로 자리잡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