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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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중부시론 표언복] 19세기, 서구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지 경영에 열을 올렸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이들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해가고 있던 때 이들의 망막 안에 든 한반도는'썩 괜찮은 먹잇감'이었을 터. 그래서 양인들의 출몰이 잦고 자기들끼리 벌이는 각축이 심했다. 그 중에도 뒤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의 탐욕은 언제라도 한바탕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 1895년 4월에 체결된 청.일 사이의'시모노세키조약' 제1조. 청의 입 안에 들어 있던 조선을 빼내어 일본이 차지하겠다는 속셈이었다. "영국은 청국에 대해, 일본은 한·청 양국에 대해 각기 특수한 이익을 갖고 있으므로 타국으로부터 그 이익이 침해될 때에는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1902년 1월의'영일동맹'.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 평화에 직접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1905년 7월, 미국과 일본 사이의'가쓰라-태프트밀약'제3조. '조선'이라는 먹잇감을 둘러싼 포식자들의 흥정과 거래가 이러했다.'일본보다는 아라사가 낫겠거니'싶어 그 쪽에 어깨를 기울이던 국모가 제 나라 궁궐 안에서 일본 낭인들의 칼에 도륙당하고(을미사변), 겁에 질린 임금이 남의 나라 공관에 숨어(아관파천) 1년 넘게 바깥출입을 못하고 지내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꼭 110년 남짓 전의 일이다.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이라 바꾸고 칭호를 '황제'라 하며 결기를 부려보았지만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결기는 그저 애처롭고, 남의 웃음거리나 될 뿐이었다.

"일본국 정부는 동경에 있는 외무성을 통하여 금후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할 수 있고 일본국의 외교 대표자와 영사는 외국에 있는 한국의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1905년 11월 17일, 무장한 일본 헌병의 포위 속에 강제 체결된'제2차 한일협약'('을사보호조약')의 제1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대신해 모든 외교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권은 이 때 이미 다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1910년 8월 16일, 석 달 전 3대 통감이 된 데라우치가 이완용에게 합방조약안을 내밀고 조인을 서두르도록 압박했다. 이틀 후 각의가 열리고 나흘 뒤인 22일 어전회의가 열렸지만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 이완용과 데라우치는 이날 합방조약에 조인하고 1주일 뒤인 29일 공포했다.

나라는 이렇게 망하고 백성은 이로부터 일제의 노예가 되었다. 매천 황현은 이날의 비극을"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산천도 찡그리고/무궁화 이 강산이 침몰해 버렸구나"하며 슬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나라 없는 백성이 치러야 했던 참혹한 수난을 어찌 다 형언할 수 있을까. 해방 직전을 기준으로 고향에서 내몰린 채 이역을 떠돌던 인구가 5백만 명 이상이었다, 징용과 징병 등으로 강제 동원된 인구가 3백만을 넘고. 그 중'정신대'에 끌려간 여성이 23만 명이었다. 태평양전쟁 기간에 희생된 한국인의 수가 224만 명이라는 기록이 있다지만, 일제강점기 전 기간을 통해 희생된 인구수는 아직 제대로 된 통계조차 나와 있지 않은 실정이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그리고 피해는 인명의 손실만이 아니었다. 이같은 식민지 경험은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고, 나라가 부강해야 개인의 삶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뼈와 살 속에 새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연히 나라를 지키고 힘을 길러 다시는 100년 전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국민의식의 한가운데 뿌리내리고 국정의 최우선 지표가 되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해방 73년을 맞은 지금 우리의 형편이 열강의 사냥감 신세와 같던 100여 년 전의 처지와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결코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주변 강대국들의 으르렁거림을 보면서 그들끼리 주고받은 옛 조약들을 상기하노라니 슬프고 통탄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국가는 생물과 같은 것. 경쟁에서 밀리면 언제든지 도태되기 마련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자강'만한 길이 없다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개화 . 수구, 친일 . 친러 등으로 나뉘어 싸우던 108년 전의 조정이 그랬듯이 진보 . 보수, 친북 . 반북 등으로 갈리어 제 살 깎아먹기에나 몰두해 있는 오늘의 정세로는 나라의 안위를 안심할 수 없다. 국치 이상, 아예 지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나라를 생각하여 이제라도 너나없이 다 나라를 걱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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