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장마가 그치면서 바캉스 시즌이 활짝 열렸다. 보릿고개 넘어갈 때인 60~70년대는 '바캉스'라는 말이 남의 일 같고 마냥 사치스럽게 느껴졌지만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은 요즈음은 너나 할 것없이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 시즌에 피서 한번 못가면 '쪼다 가장'소리를 듣기 예사다. 그래서 여름철 피서는 어떤 의무감마져 든다. 형편에 맞게 피서를 간다면 누가 뭐라겠는가. 없는 살림에 빚을 내고 카드 빚을 얻으면서까지 '외상 피서'를 떠나니까 피서 뒤끝에 후유증이 찾아드는 것이다.
 어렵사리 떠난 피서는 교통지옥에 멍들고 바가지 상혼에 엉망이 되기 일쑤다. 여기 저기서 고성능 스피커를 밤새 틀어놓고 잠을 설치게 하는 것은 또 무슨 심술일까. 자기네들 즐기자고 주위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은 문화 시민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엄연히 '취사금지' 팻말이 붙어있음에도 곳곳에서 고기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마구 버린 피서 쓰레기가 강바람 산바람을 따라 춤을 춘다. 피서지를 혼자서 전세낸 것도 아닌데 고성방가에 방뇨를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선진 시민으로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피서대열의 또하나 특징은 '떼거리 피서행렬'을 들 수 있다. 이웃 사촌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은 얼마든지 좋으나 여럿이 모이다 보면 음주가무나 고 스톱 등 불건전한 오락에 빠지기 일쑤다. 어느 곳에서는 아이가 물에 떠내려 가는 줄도 모르고 고 스톱을 쳤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서구에서의 피서는 거의가 가족단위다.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이때쯤이면 차 뒤꽁무니에 캬라반을 매단 피서차량의 행렬로 몸살을 앓는다. 캬라반에서 숙식을 해결한 이들은 절대 자연을 훼손치 않는다. 심지어 용변까지도 밀폐된 용기에 담아 되가져 온다.
 안개에 휩싸여 칙칙한 날씨를 보이는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햇볕 쏟아지는 이베리아반도, 이탈리아반도를 즐겨 찾는다. 바캉스 시즌에 캬라반이 있냐 없냐는 부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땀흘려 일하여 번 돈으로 캬라반을 구입하여 차 뒤에 매달고 피서를 떠나는 것이 유럽인들의 소망이다.
 지난해 여름, 북경의 주구점(周口店) 유적에서 일본인 초등학생을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그는 혼자 배낭을 매고 이곳에 왔다. 그 이유를 물으니 '50만년전 북경원인이 출토된 이곳을 둘러보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이 여름방학 숙제'라며 '다른 아이들은 말(馬)을 타고 초원을 달리기 위해 몽골로 갔다'고 대답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기 위해 대륙 여행에 나선 일본인 초등학생을 보면서 부러움과 섬뜩함이 교차되었다. 무슨 연수 등 해외여행에 떼거리로 몰려가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일본인 초등학생이 자꾸 대비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세계화 시대를 맞아 관광매너도 많이 개선될 법한데 상당수의 한국 여행객들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금연구역에서 담배피우다 벌금물고, 식당에서 빨리달라고 독촉하다 망신당하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상당수다. 어느 호텔에서는 소란을 피운다는 이유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OECD 가입에 걸맞는 성숙한 여가문화가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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