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텔로프 캐니언' 협곡사이로 쏟아진 햇살·모래먼지
신비하고 몽환적 분위기 담으려 흑백사진 전이·조작

피터 릭 作 '유령' 2014

피터 릭의 '유령'은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앤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의 풍경을 찍은 흑백사진이다. 앤텔로프 캐니언은 그렌드 캐니언의 동쪽에 위치한 협소한 협곡(峽谷)이다. 그곳은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중 하나'라고 한다. 윈도우 7에 제공된 바탕화면 이미지들 중에 앤텔로프 캐니언의 이미지도 있을 정도이다. 앤텔로프 캐니언은 협소한 까닭에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관광객들은 주로 정오 시간대에 협곡을 찾는다. 왜냐하면 정오 시간대에 협곡의 바닥까지 햇살이 쏟아져 협곡을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피터 릭의 '유령'이 정오 시간대에 촬영된 것임을 알려준다. 급경사면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깊게 패인 협곡의 곡선들이 환상적이다. 그리고 협곡 상공에서 한 줄기 햇살이 쏟아진다. 피터 릭의 '유령'은 협곡 사이로 쏟아진 햇살에 모래 먼지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포착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앤텔로프 캐니언 내부에 모래 먼지가 자욱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협곡에 날리는 모래 먼지의 모습이 우연적으로 찍힌 것이라고 말하기에 제목('유령')과 딱 어울린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무리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을 기다려도 그 형상은 나타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당 필자, 피터 릭의 '유령'과 비슷한 사진이 있는지 확인하기위해 구글 이미지에서 '앤텔로프 캐니언'을 검색해 보았다. 피터 릭의 '유령'과 비슷한 협곡에 쏟아지는 햇살을 찍을 이미지들이 적잖았다. 하지만 필자가 그 사진들을 클릭해 보니 협곡에 쏟아지는 햇살이 대부분 직선이었다. 그런데 피터 릭의 햇살은 특히 오른편 햇살 윤곽을 보면 왼편과는 달리 불규칙적이다. 그리고 구글에 올려진 사진들 중에 햇살에 비친 모래 먼지를 포착한 사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진들에 포착된 먼지들은 직선의 햇살과 마찬가지로 균일해 보였다. 반면에 피터 릭의 '유령'에 포착된 먼지들은 불규칙적이었다. 더군다나 햇살에 비친 모래 먼지로 만들어진 형상은 제목 그대로 '유령'처럼 보인다.

이런 단편적인 시각적 정보들은 피터 릭의 '유령'이 컴에서 조작(리터치)된 것이 아닌가 추측케 한다. 이를테면 피터 릭이 포토샵(Photo Shop)에서 보정과 수정을 거치지 않는 이상 '유령'은 인쇄되기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머시라? 피터 릭이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전이시켜 '유령'처럼 보이는 것 같다고요? 만약 당신이 피터 릭의 모든 사진들을 조회해 본다면, 그의 대부분의 사진들이 컬러사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와이? 왜 피터 릭은 '유령'을 흑백사진으로 전이시킨 것일까?

만약 당신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고자 한다면, 거꾸로 피터 릭의 흑백사진 '유령'을 컬러사진으로 변환해 보면 될 것 같다. 컬러사진 '유령'에는 햇살과 암석의 절벽 사이에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말하자면 햇살과 절벽 사이에 색감뿐만 아니라 질감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차이들은 컬러사진을 흑백사진으로 변환하면 희미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차이들이 상당 부분 흑백톤에 묻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토샵에서 흑백사진의 부분들(햇살의 윤곽선과 먼지들)을 수정하더라도 조작한 흔적을 찾아내기 쉽지 않게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피터 릭의 '유령'은 그 어떤 조작도 하지 않은 구글에 올려진 앤텔로프 캐니언 컬러사진들보다 더 자연적인 사진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거꾸로 스트레이트로 촬영한 컬러사진들이 오히려 인공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이다. 뭬야? 어느 점에서 스트레이트로 찍은 컬러사진들이 인공적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이냐고요? 협곡 사이로 쏟아지는 직선적인 햇살이나 햇살과 어우러진 깨알 같은 모래먼지의 규칙적인 모습 그리고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보이는 절벽의 절묘한 윤곽선들과 환상적인 컬러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피터 릭은 컬러사진에 담긴 그 아름다운 요소들을 흑백에 묻어놓았다. 와이? 왜 그는 그 아름다운 요소들을 흑백에 묻어놓은 것일까? 그는 흑백사진에서 조작을 통해 '유령'이라는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사진을 만들어놓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피터 릭의 '유령'이 70억이 넘는 가치가 있느냐는 필자에게 질문한다면, 필자는 '노(NO)!'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 점이 궁금하신 중부매일 독자 분들이 계신다면 다음 연재를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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