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오리어 작 '행복' 윈도우 XP. 마이크로소프트. 1996.

필자는 지난 연재를 통해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수공업의 종말'을 선고한 '대량생산'에 주목했던 현대미술로 간주한 반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미국의 후기소비사회와 함께 태동했던 '대중매체'에 주목했던 후기현대미술로 보았다. 그런데 '수공업의 종말'을 선고한 '대량생산'과 함께 탄생한 기계가 있다. 사진기가 그것이다. 물론 오늘날 디지털 카메라는 '대량생산(복제)'뿐만 아니라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대중매체'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진계는 그동안 사진의 형식과 내용에만 주목했을 뿐,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접근에는 소홀했던 것 같다. 지난 2016년 10월부터 중부매일의 지면을 통해 연재하고 있는 '류병학의 사진학교'는 바로 '매체로서의 사진'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연재의 서두를 '매체로서의 사진'에 주목했던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인용하면서 시작했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흔히 벤야민을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게 한 텍스트로 간주된다. 오늘날 모바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우리들처럼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 사람들 역시 새로운 기술혁신에 의존하게 되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매체들 중 특히 사진과 영화에 주목했는데, 그는 사진과 영화로 인해 전통적인 예술개념이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은 '사진 복제품'에 주목했다. 그는 사진 복제품을 통해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음을 간파한다. 그것이 바로 '상상의 박물관'이다.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은 예술작품들을 사진으로 복제한 일종의 '도록(인쇄물)'을 뜻한다. 따라서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도판들로 실린 박물관의 도록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예술작품들을 만나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벽 없는 박물관(museum without walls)'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벤야민과 말로가 살았던 아날로그 기술복제시대가 아닌 '디지털 기술복제시대'이다. 디지털 복제시대의 사진작품과 사진도록은 모두 컴퓨터로 편집되어 디지털 프린팅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복제'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시킨다. 왜냐하면 디지털시대에는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아날로그 포토는 특정의 장소(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장)에서 전시되기 때문에, 관객은 특정 장소를 방문해야만 작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비물질적' 디지털 포토는 언제 어디서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감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가벼운(비물질적인)' 디지털 포토는 여러분의 가족과 함께 가정에서 TV로, 직장 동료와 함께 사무실에서 PC로, 연인과 같이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혹은 이동 중에 모바일을 통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포토는 누구나 '디지털 퍼니처'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민주주의적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대표적인 디지털 포토가 바로 당신이 매일 아침마다 보는 바탕화면이다. 윈도우 XP 바탕화면의 배경인 푸른 초원의 사진 말이다. 그 사진은 1996년 당시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였던 찰스 오리어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나파 밸리(Nappa Vally) 옆에 난 도로를 따라 운전하던 중 푸른 들판과 파란 하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언덕을 보고 차에서 내려서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오리어의 '행복(Bliss)'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배경화면으로 채택하면서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혹자는 '행복'을 "컴퓨터 그래픽인 줄 알았는데 사진이었구나"라고 말한다. 물론 '행복'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이미지'는 아니지만 풍경을 찍은 사진 그 자체도 아니다. 이를테면 그것은 오리어가 찍은 풍경사진을 포토샵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말이다.

'행복'을 찍은 "사진작가가 진짜 부자됐겠다"라는 누구의 말처럼, '행복'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저작료를 받은 사진일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 네티즌이 '행복'을 "정말 컴퓨터 있는 사람 중에 이 사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고 말했듯이, 그 배경사진은 일명 '10억 명이 본 사진'으로 간주된다. 이 점이 바로 필자가 생각하는 '디지털 포토'이다.

만약 아날로그 포토가 '1%'를 위한 사진이라면, 디지털 포토는 '99%'를 위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당신의 손안에 '미래의 사진'이 달려있는 셈이다. 그리고 당신의 모바일이 '미래의 미술관'이 될 것이다. 덧붙여 '우리는 모두 사진작가'이다. 당 필자, 그동안 '류병학의 사진학교'에 관심을 가져준 중부매일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독립큐레이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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