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세력들의 방해로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좌절된 지 56년만에 다시 과거청산의 기틀을 마련했으니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막상 법안을 들여다보면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게 돼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두 야당이 자기네 입맛에 맞게 주물럭거려 누더기 법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수십 년만에 잡은 기회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야당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없다.
어제 법사위에서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연출됐다.
특별법안의 ‘일본 제국주의군대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조항을 두고 ‘일반 장교’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중좌 이상의 장교’로 할 것인지를 두고 팽팽히 맞섰다는 것이다. 일제 군 장교는 남이 끌어서가 아니라 자기 발로 일제 군문에 찾아 들어간 자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생계형’ 친일이 아닌 데다 그들 행위야말로 반민족 친일의 대표적 사례이다.
중좌 이상과 이하를 구분해야 할 하등의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창피를 자초하다 끝내 수의 힘으로 밀어 붙이는 만용을 부렸다.
‘통상 군대에서 장교가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계급은 중령’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해석은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 식 계급론’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독창적이다.
민주당 조재환 의원의 주장은 더욱 가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을 공격할 의도로 군 장교 조항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 문제를 한낱 당리당략 차원으로 끌어 내리는 자기비하는 연민의 정마저 불러 일으킨다.
일제 시대 조선인으로서 중좌 이상의 장교로 복무한 자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서 두 야당 의원들의 속셈이 뻔히 드러난다.
창씨개명, 역사왜곡에다 이제는 일제군 장교 경력까지 친일 반민족 행위에서 제외시키겠다는 것이다.
면죄부를 쥐어주지못해 안달인 두 야당 의원들이 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묻고 싶다.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이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들을 비난할 자격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