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은 삼일절 8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방송에서는 대통령과 3부요인이 참석하는 성대한 삼일절 기념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연세가 높으신 광복 인사께서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썼어도 여전히 어려운) 구문장으로 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원된 듯 보이는 학생들로 가득찬 기념식은 사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지 못하였다.
 더욱이 신문보도를 보면 서울의 한 부자동네에서는 태극기를 달지 않은 집이 90%에 달하였고, 연휴라고 골프를 치러가는 사람, 외국여행 가는 사람으로 동네가 비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이들 주민들은 삼일절을 엄숙한 기념일이기 보다는, 쉬는 날로 이해하여 여가를 이용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런데 이처럼 국민들이 관심을 갖기 어려운 기념일을 왜 우리는 3.1운동 발생 후 85년이나 지난 지금도 기념하고 있을까? 아니, 왜 해야할까?
 삼일운동은 우리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린 최초의 민족운동이었다. 단일민족인 한민족의 독립이 정당함을 주장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가 부당함을 알리려는 민족적 투쟁운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방이후 민족 상잔의 비극을 거치면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우리사회의 단결심 고취를 위해 삼일운동은 본이 되는 역사적 장거일 수밖에 없었다. 즉 민족통합을 바탕으로 한 삼일운동은 우리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고귀한 역사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잠시나마 위기를 벗어나 평화를 기대하게 된 우리사회는 삼일운동과 같이 민족투쟁을 강조한 역사를 소홀히 볼 여지가 충분하였다. 냉전시기에 경계하였던 공산주의라는 적의 위협이 약화되는 순간 민족의 엄숙한 테두리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일본이 이웃이고, 중국이 친구로 다가오는 순간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민족의 개념이 더 이상 절박한 부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세계화가 보편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국제사회는 다시 우리사회가 민족국가 단위의 지방화 개념을 인식하지 않는 한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임을 보여주고 있다. WTO 체제 속에서 세계사회는 경쟁을 테제로 하는 자유주의 구조로 진행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경제강국과의 관계는 물론, 북한과의 관계도 제한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미묘한 시점이다.
 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무관세 무역제도의 불가피한 도입은 농민을 파산으로 몰아갈지 모른다. 중국과 같은 후발산업국의 급박한 추격은 우리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은 핵문제에서 보듯이 우리의 기대대로 진전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은 우리의 구도대로 이끌어가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
 결국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애국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평화구축의 긴급성, 그리고 세계사회의 무한경쟁 테제 속에서 조국과 민족의 숭고함을 일깨우는 삼일절은 매우 뜻깊은 기념일이다. 나이어린 처자의 몸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유관순 열사의 고귀한 희생정신은 우리사회가 건강하게 거듭나기 위한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이 존경받는 사회도 아니고, 명예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붙잡고 매달릴 가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심화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충북대 정외과교수 김 도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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