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미혹되어 사물의 본질을 이해 못함

바람이 분다. 가을을 재촉하는, 아니 이미 가을바람이다. 뜨거운 성하를 알렸던 매미소리가 사라지고 가을의 전달자 귀뚜라미가 울어대면, 아! 벌써 가을인가?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아마도 어느새 한 해의 축이 끝을 향해 기울어가기 때문일 것.

이 무렵이면, 나도 모르게 사색에 빠져 한해에 대한 중간평가를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결론은 늘 동일하다. 뭐 그리 집중적으로 한 것도, 평소에 간절히 하고 싶었던 일을 마무리지지도 못했고, 연말까지 마쳐야 할 일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별반 없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나마 자책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일이라면, 오래전에 계약했던 번역 건 하나 마친 정도! 10월 말이면 인쇄되어 나올 이 책을 번역하면서 하나의 지혜를 얻었다면 얻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작은 정성으로 꾸준히 샘물을 파면 언젠가는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변하지 않는 도리를 다시금 깨우쳤다고 할까. 재미있는 중국 속어가 떠올라 소개한다.

옛날에 한 책벌레, 한 書生(서생)이 책을 읽다가 '매미가 잎사귀로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는 즉시 이러한 나뭇잎을 찾아 자신의 눈을 가리고 아내에게 "내가 보여요?"라고 물었다. 아내가 "보여요"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에 그가 끊임없이 물어대자 아내가 귀찮아서 "안 보여요"라고 말해버렸다. 이에 그가 마냥 좋아서 이 나뭇잎으로 눈을 가리고 시장에 가서 물건을 훔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심문을 받을 때 그가 "내가 이 나뭇잎으로 눈을 가리면 누구라도 나를 볼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배득렬 교수
배득렬 교수

너무나 간단한 寓言(우언)인지라 一見(일견) 별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다. 허나 곰곰이 그 의미를 곱씹어보면 우리에게 示唆하는 바가 크다.

매번 같은 한 해를 보내며 늘 범하는 우가 계속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一葉障目'은 아닐까? 사물의 본질, 즉 시간과 공간 속에 자리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덕목을 잊고 사는 것이 마치 나뭇잎으로 눈을 가리고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격다짐하는 것은 아닐까? 참된 지혜는 바로 자신의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서 발아한다.

이 좋은 가을날! 우리는 스스로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스게 소리 한 마디에 세상이 달라 보이는 기쁨이 찾아오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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