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이 모여 돌을 뚫는다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중부매일] 대학은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다. 치열수! 젊은이들의 열정이 한밤중에도 교정을 대낮처럼 불을 밝히게 만든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학생들의 안색이 예전만 못하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멋지고 예쁜 학생들이 모자를 푹 눌러 쓰거나, 대충 아마데서나 책을 볼 수 있는 복장에, 심한 경우에는 아예 집에서 신는 슬리퍼를 신고 대학 교정을 활보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아마도 나도 대학시절에 이런 모습이었으리라!)은 더럽다거나, 보기 싫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학생답고, 우리나라를 이끌 미래의 인재들이 우리 학교의 교정을 넘나든다는 사실에 기분이 제법 고조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치열함, 젊은이의 열정적 모습이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기간이 지나면 학생들은 조금은 느긋한, 아니 어찌 보면 한가하거나 게을러 보이기까지 한다. 도서관은 비어 있고, 정독실에는 몇몇 취준생들만이 자리할뿐이다. 저녁 늦게 대학가를 둘러보면 시험의 종료와 함께 흥청이는 선술집, 그리고 그 안에서 붉게 취기가 오른 학생들을 본다.

때론 그럴 수 있다. 친구와 진지하게 미래를 논하며 술 한 잔 하는 것이야 뭐라 하겠는가만, 다만 이러한 모습이 일상이 된다면 그건 분명 큰 문제다.

제자들에게 "작은 것이 쌓여야 큰 것이 되고, 축적이 있은 연후에야 비약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대학시절은 아마도 작은 것을 축적하여 태산 같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닐까 해서다.

이 말은 잔소리가 아닌데, 아니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체험적으로 절실하게 느낀 변할 수 없는 도리인데, 이 말을 하면 학생들은 너무 뻔한 말로 치부하는 듯하다. 진정한 道(도)는 평범하다.

그래서 돌에도 있고, 물에도 있으며, 공기에도 있는 것이다. 특수성을 강조하는 道는 세상에 없다. 모든 道는 보편적 가치를 우선한다. 『宋史: 송사』에 나오는 고사는 우리 학생들이 꼭 알았으면 하여 소개한다.

宋朝(송조) 때, 崇陽縣令(숭양현령) 張乖崖(장괴애)는 청렴하고, 정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한 錢庫(전고)를 관장하던 관리가 錢庫에서 나오면서 동전 한 푼을 두건에 넣어서 가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張乖崖가 그를 잡아서 부하에게 곤장을 치라고 명하였다.

창고의 관장하던 관리가 불만섞인 어투로 "동전 한 푼은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아닙니까? 그런데도 끝까지 나를 때려야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張乖崖가 이 말을 듣자 더욱 화가 나서 "하루에 한 푼이면 1천일이면 1천 푼이다. 1천 일이면 끈으로 나무를 자를 수 있고,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낼 수 있다(一日一錢, 天日一千; 繩鋸木斷, 水滴石穿)"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시간이 길면 부드러운 끈으로 나무를 자를 수 있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딱딱한 돌을 뚫을 수 있는 것처럼 동전 한 닢을 훔치는 좀도둑질이 중대한 죄가 될 수 있는 법이라는 의미. 이에 그 관리를 사형에 처했다.

1천 일이면 부드러운 실로 나무를 벨 수 있는 법. 아무리 재주가 없어도 꾸준히 갈고 닦고 연마하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평범한 우리 라는 사실.

이 가을,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위해 하루에 어떤 일을 어떻게 꾸준히 실천할 것인가를 생각해봄직하다. 아! 서늘한 가을밤, 나를 사색으로 인도하라!

/ 배득렬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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