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영화 '보헤미안랩소디' / 다음 영화
영화 '보헤미안랩소디' / 다음 영화

연말을 앞두고 좋은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개봉한 다음 날, 가족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영국에는 두 명의 여왕이 있다고 한다. 한사람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락 밴드 '퀸'을 지칭하는 말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 의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작사했다 '엄마!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 삶이 막 시작되는데, 모든 것을 내팽개졌어요....' 잘못을 저지른 한 소년이 사형장에서 두려워하는 장면으로 묘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다.

여고 시절에 '아바' 노래와 함께 ' 비틀즈' '비지스' 노래에 한창 심취해 있었다. 그 당시 전성기를 누렸던 '퀸' 밴드의 음악은 아카펠라, 발라드, 오페라, 하드락 등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주말이면 카세트테이프를 하루 종일 틀어놓고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중성적인 목소리는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색깔과 그의 특유의 가창력은 내가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radio ga ga'등은 중독성이 있어 하교 길, 전파상에서 울려 퍼질 때마다 흥얼거려다.

50대인 내게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조명되어 학창시절이 문득 문득 떠올랐다. '떠돌이 절규'로 만든 가사는 그의 인생과 비교되면서 드라마처럼 다가왔다. 공항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면서 음악을 꿈꾸던 이민자 출신이 프레디는 영국 '퀸' 밴드에 영입되면서 1973년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공연을 했다. 다른 밴드와는 색다른 모습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1975년 전성기를 맞이하며 전설의 락 밴드 '퀸'으로 활동하기까지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그렇게 부와 명예와 대중의 사랑을 모두 얻었지만 그는 양성애자로 고독한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 그의 공연이 정점을 찍게 되는 날이 왔다. 1985년 영국의 웸블리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live aid 공연이었다. 약 15억 명의 시청자들이 함께 한 실황 중계에서 20분 동안 그는 특유의 퍼모먼스와 관중과 함께 한 케미 스트리는 보는 내내 눈과 귀가 즐거웠다. 영화에서도 실제 무대와 프레디 머큐리의 리얼한 명곡을 완벽하게 재현한 배우 '라미 말렉'은 의상과 모션까지 그대로 재현한 싱크로율에 소름이 돋았다. 엔딩 그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의 감동보다는 한국인의 정서상 양성애자라는 편견으로 먹먹함이 더 해왔다. 음악을 하고 있는 아들과 '퀸' 의 결성과 죽음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그가 45세 나이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지 27년이 지났다. 그가 양성애자로 자신을 잃고 나서야 자신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안타깝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대 위에서만은 외롭지 않았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팬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음악에 대한 열정만을 팬들에게 기억하길 바랐던 그였다. 투병 중에도 다양한 음악적 실험으로 앨범을 냈으며 미처 발표하지 못한 곡들은 사후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는 갔지만 아직도 피크를 쓰지 않고 동전으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럼어 '로저 테일러' 는 활동하고 있으며, 내한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이번 영화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프레디 머큐리가 아직도 살아있었다면 팝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믿는다. 뮤지션 영화를 보면서 슬펐던 영화, 짧은 삶이었기에 그리 불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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