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관, 더 진화되어야
교직관, 더 진화되어야
  • 중부매일
  • 승인 2019.01.23 11: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부시론]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최근 교사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일들이 빈발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특히 교직관(敎職觀)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변화도 한 몫을 했다. 70~80년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전교조 출범과 동시에 교사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크게 힘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벨리는 일을 '직업(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으로 분류했다.

'직업'으로써의 일은 노동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물질적 보상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생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경력'으로써의 일은 자신의 이력을 쌓는데 주력하는 케이스다. 이들은 직장 내에서 승진을 가장 우선시 한다. 조직의 발전보다는 자신의 거취와 발전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소명'으로 여기는 일은 일 그 자체가 곧 삶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승진이나 생활의 수단이 아닌 자신의 즐거움이며 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금전적 보상이 적어도, 조직 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어도 자신이 하는 일 자체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서 교직은 산업화 이전까지만 해도 성직관(聖職觀)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교직사회 내부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여전히 성직관을 고수하는 관점도 있지만, 노동직 관점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자기성취의 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성직관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의식, 임금과 아버지, 그리고 스승은 하나라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이유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19세기 독일의 입헌 군주제처럼 군주와 시민의 관계로 인식하기도 한다. "19세기 교사들이 20세기 교실에서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특별 권력관계'나 '특별 신분관계'로 보는 셈이다. 아이들의 인권보다는 교권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노동자관은 1980년대 후반 전교조가 출범하면서 급격히 확산된 인식이다. 교사들도 교사이기 전에 한사람의 노동자라는 생각이다. 가장 큰 특징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성직수행도, 소명도 아닌 노동활동 자체로 본다. 비교적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인식이 두드러진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학생들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직분을 수행해가는 교사들도 있다. 가르치는 일을 소명으로 여기고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들이다.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교사, 아파하는 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는 교사, 아이들의 언 발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교사, 이들이야 말로 소명에 의해 자신의 직분을 수행하는 교사들이다.

우리는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교사들에게만 끝없는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인식이 극단으로 치우쳤을 때의 일이다. 성직관만을 고수한다고 생각해보라. 특별 권력관계나, 특별 신분관계라는 수직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공부할 수 있겠는가. 지나치게 노동직 관점만을 고수한다고 생각해보라. 교사들이 금전적인 대가만을 좇아간다면 교육현장은 노동운동의 현장이 될 것이다.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한병선 문학박사·교육평론가

현대사회에서 직업 활동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활동이다. 교직에 종사한다고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 기반은 '소명의식(calling)'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이 바탕이 된다면 하는 일에서 삶의 행복과 보람을 더 크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생계가 자연스럽게 유지될 수 있으며 교직은 새로운 관점으로 진화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