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눈] 김동우 YTN 충청취재본부장

1960년대 참 눈이 많이 왔다. 주로 함박눈이 내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눈 치우는 것이 정말 고역이었다. 오죽하면 다른 곳은 눈이 와도 우리 집 마당에는 오지 않기를 빌기까지 했다. 잦은 폭설로 마을 길이 막혀 눈 터널을 뚫고 옆집에 간 적도 있다.

눈은 더러움을 덮어 주고, 특히 함박눈은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연인들에게는 이유 없는 만남의 건수가 된다. 어른들에게는 동심의 세계를, 아이들에게는 추억 만들기를 제공한다. 나무 등 자연물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빚게 한다. 한겨울 메말랐던 대지를 살포시 덮으며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이제 이런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지난해 말에 이어 지금까지 눈다운 눈이 오지 않는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때문일까? 지구가 점점 더워지면서 우리나라 겨울 동안이 줄어들고 평균 기온도 높아진다. 높은 하늘에서는 눈이 시작되지만, 지구에 다가올수록 녹아 비가 되거나 증발하고 있다.

눈이 오지 않으니 세상사 변화도 참 많다. 이제 운전이나 도보 시 걱정을 덜 한다. 공무원들은 제설작업에 동원되지 않는다. 제설 차량이 개점휴업 상태다. 농민들이 동네 안길 눈 치울 수고도 없다. 비닐하우스 등 농사 시설 붕괴도 우려하지 덜 한다.

'눈이 많이 내리는 해는 풍년이 든다.' 눈이 녹으면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수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설풍년지조(雪風年之兆)'란 성어가 무색해지고 있다. 이 추세대로 라면 올해 풍년을 기대하기는 다 글렀다.

아주 먼 옛날 눈 때문에 과거에 급제해 어사대부까지 올랐던 사람이 있다. 중국 동진(東晉) 손강(孫康)이다. 그는 같은 나라 차윤(車胤)이 여름밤에 불 밝힐 기름이 없자 반딧불이를 잡아 공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름에는 자신도 따라 했지만 겨울이 되자 걱정이었다. 겨울에는 반딧불이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결국 반딧불이 대신 눈을 택했다. 완전히 무장한 채 밖으로 나와 눈앞에서 책을 읽었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니 추위도 잊었다. 손강이 눈이 없었으면 벼슬을 했을까? 눈은 반딧불이와 함께 '형설지공(螢雪之功)'을 탄생시켰다.

'납설(臘雪-음력 섣달에 내리는 눈)은 보리를 잘 익게 하지만 춘설(春雪)은 보리를 죽인다.' 납설은 보리가 동면하는 한겨울에 내려서 추위로부터 보리를 보호한다. 반면 춘설은 보리가 기온이 높아져 막 자라기 시작하는 때여서 자칫 보리를 얼려 죽인다. 이제는 농민들은 보리 동해(凍害)를 걱정할 필요 없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마을 어귀에 서 있던 꼬마 눈사람도 볼 수 없다. 덩달아 꼬마 눈사람 동요도 사라졌다. 눈과 관련된 대표적 민속놀이의 하나였다. 눈이 오면 전쟁도 벌어졌다. 눈싸움, 설전(雪戰)이다. 하지만 눈싸움은 승자와 패자가 없다. 눈에 맞아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 고약한 놈들은 눈덩이 안에 조그만 돌멩이를 넣어 던지기도 해 간혹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주먹만 하게 뭉친 눈을 던지며 서로 즐기는 놀이다. 눈싸움은 겨우내 바깥 생활 기피로 약해진 체력을 단련하고 협동심을 기르기 위함이었다. 비료 포대를 깔고 앉아 비탈진 장소에서 눈썰매를 즐기던 놀이도 추억으로만 남았다.

예부터 겨울에 눈이 오지 않는 것도 천재(天災)라고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처럼 기설제(祈雪祭)를 지냈다. 24절기 중 대설(大雪-양력 12월 7일)에 이뤄졌다. 대설은 눈이 많이 오는 날이다. 이젠 무색해지고 있다. 아예 24절기에서 빠져야 할 절기로 전락되어가고 있다. 문헌으로 보면 고려 시대 이후 기설제를 지냈지만, 기우제보다 드문 편이었다. 그만큼 눈 은 제때 내려줬다는 사실이다. 기우제는 아직 곳곳에서 실행된다. 반면 기설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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