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의 차 이야기 - 32.다향(茶香)
정지연의 차 이야기 - 32.다향(茶香)
  • 이지효 기자
  • 승인 2019.01.29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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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의 결실이 소담한 책으로 엮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세상에 이롭다는 자부심으로 뭉쳐진 편린들이다. 개원 5년 만에 탄생한 교육원 소식지에 '다향'이란 이름을 붙였다. 흑백으로 나열된 글과 사진들. 촌티 나는 겉표지가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받았던 교과서만큼이나 설렌다.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작설이 눈부신 새봄에 아이의 살 냄새를 찾아다녔다. 새해가 되면 의식처럼 치러지는 차 덖기는 차인들의 일 년 양식인지도 모르겠다. 따사로운 햇살이 웅장한 지리산 골짜기를 연녹빛으로 물들일 때, 그것들은 겨우내 비축했던 향기 감추지 못하고 울컥울컥 토해냈다. 그 여린 절규들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비릿한 황홀감을 어찌 잊을 것인가. 푸른 잎들이 빚어내는 진액이 뱃속을 적시면 손등에 땀방울이 차올랐다. 차 한 잔 마시고 우화등선 하는 기분은 아직도 새록새록 하다.

뜨거운 염천에 더 뜨거운 홍차를 마셨다. 이열치열의 홍차 수업은 다우들의 우애를 더 붉게 물들였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속리산 오리 숲길에서 무아차회를 열었다. 따가운 햇살이 녹음의 숲을 뽀얗게 물들이는 잔디밭에서 비워야 채워지는 유무의 묘한 이치를 구현하고 만물이 일치되는 순간을 엿보았다. 가을엔 광주 차 박람회에서 빠르게 변해가는 차 문화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그리고 태풍이 몰아치던 날 새벽, 해남 대흥사의 선차대회에 참관했다. 각국의 승려들이 시연하는 선차를 보며 우리 차의 소중함을 새삼 확인했다.

그리 녹록하지 않았던 한 해의 차 살림이 꽤나 분주했다. "차 한 잔 마시는 일이 뭐 그렇게 복잡해 물 끓여서 우려 마시면 되지"라는 지인의 말처럼 차가 국민 생활이 되려면 간편해야 한다. 하지만 차의 역사가 유구한 이유는 물질적인 면을 정신적으로 부합시키는 시너지효과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 교육은 문무(文武)를 겸비해야 하는 문화나 예술의 차원에서 어느 한순간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애프터눈티로 홍차문화를 점령하고 있는 유럽의 홍차와 티 블렌딩, 차 범위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 중국차는 방학을 이용해 이론과 특정지역의 차 견학으로 차의 안목과 견문을 넓혀 나갔다. 차 산업이 저조한 우리나라의 차 생산과 소비를 비추어 볼 때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한다는 원리를 이론과 체험으로 구축해나갔다.

차를 아무리 오래 마셔왔어도 차의 식견이 부족하거나 남을 배려하고 화합하는 덕이 부족하다면 다인의 향기를 느낄 수 없다. 차에 관련된 역사, 문화, 성분과 효능, 제다, 차의 종류, 행다, 예절 모든 것을 충분히 습득하고 그 행위가 몸소 우러나올 때 비로소 茶香의 참됨을 알 수 있다.

정지연 원장
정지연 원장

개강이 다가온다. 부족한 다우들 속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원칙으로 삼는 교육과정의 막중함은 비포장도로를 달려가는 버스처럼 내 가슴을 흔든다. 하지만 무엇을 이룬다는 것보다 무엇을 보고 가는가에 삶에 의미를 담는다. 때로는 다우들을 기다라는 빈 의자가 민망하고 다도의 참 맛은 알기도 전에 스스로 무너져나가는 이들을 위하여 차다운 차를 향유하는 날을 정성들여 기다린다.

순한 삶이 그립고 참다운 향기가 목마른 이들에게 차 한 잔 우려낼 수 있는 삶의 여유를 다향(茶香)지에 차곡차곡 쌓아 나가야겠다. /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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