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윤희 수필가
대문을 나서는데 까치 소리가 요란하다. 집 앞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맑고 경쾌하게 아침 공기를 가르는 울림이 기분을 밝게 해 준다. '까치 소리가 저리 상쾌했었나?' 소리를 좆아 나무 위를 올려다본다. 서너 마리가 집 쪽을 향해 목청을 돋운다. 무슨 반가운 소식이라도 전해주려는 양 신이 나서 지저귄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다. 아니, 평소에도 늘 그랬는데 무심히 지나쳐서 듣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어린아이마냥 좋은 소식을 기다려보았지만 별일 없이 하루가 간다. 괜스레 종종걸음 치는 일상에서 잠시, 한 숨 고르고 자연을 둘러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낼모레가 까치설이다. 황금 돼지의 해라고 수선을 떨며 내 건 달력의 첫 장을 뜯어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빨간 숫자 넷이 나란히 어깨 겯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설 명절 연휴다. 설은 원일(元日)이라 하여 한 해의 시작점이다. 시작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목을 움츠리고 겨울을 서성이는 몸의 감각을 툭 치고 들어온다. 묵은 비늘 떨어내듯 생각을 털고 여유를 가져본다.
저녁나절에 마트를 들렀다. 쇠고기 양지머리와 돼지고기 갈아놓은 것, 두부, 만두피를 사고 몇 가지 더 장을 봐왔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 판을 벌였다. 김치 한쪽을 꺼내 잘게 송송 썰어 국물을 꼭 짜냈다. 지고추도 한 움큼 다졌다. 지고추는 순전히 남편을 위한 배려다. 한참을 썰고 다지고 도마질 끝에 만두소를 버무려 거실로 내왔다.
그동안 설 명절이라고 우리 집에서 만두 빚는 일은 거의 없었다. 큰집이나 친정집에서 얻어먹거나 사다 먹었으니, 직접 만두를 빚는 일은 내게 대공사이다. 안하던 일을 벌이는 게 신통했는지 남편이 슬그머니 끼어든다. 늙은이 뱃가죽마냥 속이 헐렁헐렁 비어있다.
"피(皮) 먹자는 송편이요, 소(속) 먹자는 만두라 했는데, 이게 뭣여! 속을 빵빵하게 채워야 맛있지" 나도 모르게 핀잔을 내 뱉고 나서 아차! 싶었다.
쪄서 맛을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썩 괜찮다. 특히 지고추가 풍미를 더했다. 이만하면 큰 소리쳐도 되지 싶었다. 막내둥이가 먹어보곤 맛있다 한다. 남편은 별 말 먹기만 한다. 장한 마음에 맛이 어떤지 물었다. 좀 짜다 한다. 짜긴 뭘 짜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설탕이 조금 들어갔으면 좋았을 걸" 한다. 버러럭 화가 일었다. 살다 살다 만두에 설탕 넣는다는 건 보도 듣도 못했다며 반박을 했다. 평소 음식에 단 것을 넣으면 질색이던 사람이 생뚱맞게 만두에 무슨 설탕 타령인지 어이가 없었다. 칭찬을 하면 어디가 덧나는 줄 아는 양반이 무심결에 한마디 했다가 찔끔하는 눈치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우리 집 만두 빚기는 이렇게 코미디 같은 대화로 끝이 났다.
손녀딸바보인 지인에게서 알콩달콩 꿀 재미가 '카톡, 카톡' 날라 온다. 때때옷 곱게 입은 두 공주님이 환하게 웃으며 만두를 빚어 보이고 있다. 절로 미소가 물린다. '그래, 이거야.' 비로소 설 분위기를 맛본다.
설날이면 떡국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만두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몇 가지 유래가 전해온다. 제갈공명이 남만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노수라는 강에 이르고 보니 풍랑이 거세어져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한 주민에 의하면 마흔아홉 사람의 머리와 검은 소, 양을 제물로 받치면 될 것이라 했다. 제갈공명은 묘안을 짜냈다. 가루를 반죽하여 사람 머리 모양을 만들고 그 속에 쇠고기와 양고기를 채워 강물에 던져 제사를 지냈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무사히 강을 건너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듯 만두는 살짝 신을 속이기 위해 고안한 것이긴 해도 결국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신께 바치는 음식이 되었다. 새해 첫날 떡국 속에 넣어 조상신께 올리는, 우리의 생활 속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겨울철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기 어려웠던 시절, 만두를 통해 겨우내 부족 된 각종 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었다. 탄수화물을 기본으로 소에 넣는 고기와 두부는 단백질과 지방의 공급원이요, 부추 등 야채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재료가 고유의 식감은 살리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풍미가 산다.
만두 하나에 사람살이의 이치가 다 들어있다. 속이 꽉 찬 만두처럼 영양가 있고 맛나게 일상을 빚어내고 싶은 소망하나 내걸며 설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