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매일 김준기 기자] 청양군 정산면 백곡리 주민들은 매년 3월 1일 백실마을에 있는 '3·1운동 기적비' 앞에서 합동위령제를 엄숙히 봉행하고 독립만세의 의미를 되새긴다.

참석자들은 1919년 4월 5일 정산만세운동을 이끈 이 마을 출신 홍범섭·임의재·홍세표·박상종·윤석희 선생을 비롯해 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독립정신 계승을 다짐한다.

백곡리 주민들은 기적비제 외에도 매년 4월 19일 두릉윤성 백제부흥군 위령제, 음력 8월 18일 임정식 의병장의 위패를 모신 두촌사에서 순의제향을 지낸다. 예로부터 국난이 닥칠 때마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선열들의 드높은 기개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청양지역 주민들은 멀게는 백제 복국운동으로부터 시작해 조선조 임진왜란과 대한제국 당시의 의병투쟁, 상해 임시정부 시절의 독립운동, 100년 전 3·1운동에서 애국혼을 불살랐다.

3·1운동 당시 청양지역 독립운동은 파리장서운동 참가부터 시작됐다. 화성면 신정리 안병찬, 수정리 임한주, 장평면(당시 적곡면) 낙지리 김덕진 선생 등이 호서지방 대표자로서 서명과 대서에 나선 것이다.

이어 4월 3일 운곡면 미량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려는 시도가 있었다. 모곡리 주재소 헌병들의 사전 탐지와 탄압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4월 6일 운곡면 신대리에서 600명의 면민들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5일 오후 3시에는 정산장터에서 홍범섭, 임의재, 윤석희, 홍세표, 박상종 등이 앞장선 만세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권흥규 의사가 일제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하는 탄압을 당했지만, 4월 6일 광생리 등 3개 마을에서 500명의 만세운동이 계속됐고, 4월 7일에는 와촌리, 신덕리, 내초리 주민 150명이 횃불만세운동을 벌였다.

같은 날 화성면 산정리에서도 박공삼 선생의 주도로 30여명의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박공삼 선생은 이튿날 화성면사무소로 진격해 증축 공사를 제지하기도 했다.

4월 6일에는 목면 안심리에서 1천여명이 운집한 만세운동을 했으며 이들은 전날 정산장터에서 순국한 권흥규 의사의 시신을 자택에 있는 안심리까지 운구하면서 일제에 항거했다.

4월 7일에는 청남면 지곡리에서 이동명, 윤병환, 이영은 선생 등 여러 명의 주민들이 마을 뒷산에 올라 횃불만세운동으로 독립을 향한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청양군은 의병장 민종식 역사기념박물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토지보상 단계에 있으며 이후 설계에 착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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