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과 벽초 홍명희
3·1운동 100주년과 벽초 홍명희
  • 중부매일
  • 승인 2019.03.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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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

"아들아,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라. 먼 훗날에라도 나라를 욕되게 하지 말거라." 1910년 8월 29일. 충남 금산군수로 재임하던 일완 홍범식은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庚戌國恥)에 강분해 '나라를 되찾아 달라'는 유서를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제는 홍 열사가 평소 앓고 있던 광증(狂症)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폄하하는 등 순국사실을 왜곡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오열속에 그의 고향인 충북 괴산군 제월리 선산에 영면했다. 그 이후 일제의 만행에 대한 분개는 하늘을 찔렀다. 이것이 계기가 돼 전국 각지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운동이 싹트고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1919년 3월 19일. 괴산군 괴산읍내에 수천 명의 주민들이 운집했다. 서울과 천안 등지에서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며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데다 홍범식 열사의 자결에 분개한 주민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충북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는데, 그 주동자는 다름 아닌 홍범식 열사의 아들 홍명희였다.

홍명희는 괴산과 서울을 오가며, 중국 상하이와 남양 등지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다. 괴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투옥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역사를 공부하고 얼을 다듬는데 힘썼다. 후학을 양성하고 문학인의 길을 걸었다. 장편 역사소설 '임꺽정'은 시대의 요청이자 조선의 정신이며 우리글의 백미(白眉)였다.

'임꺽정'은 1928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반봉건적인 천민계층의 인물을 내세워 조선의 삶과 민족애를 총체적으로 담았다. 일제에 의해 몇 차례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흥미롭고 진지했기에 일본 형사조차도 열독할 정도였다.

홍명희는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3재(三才)로 불릴 만큼 천재적인 재능과 문학적 기질이 뛰어났다. 소설 '임꺽정'이 우리말의 정수로, 한국 문학사의 금자탑으로 평가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대의 아픔을 담고, 민족의 뜻을 모으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몸과 마음을 다했다. 부친의 유언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시대적 소명이자 운명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홍명희는 1948년 민주독립당을 이끌고 월북했다. 북한에서 부수상을 역임했다. 이 때문에 그의 고향인 괴산읍 제월리는 '빨갱이' 동네가 되었다. 새마을운동 시절에는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였다. 1996년부터 충북민예총과 사계절출판사에서 홍명희문학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의 고향에 문학비를 세우고 학술과 탐방, 공연행사 등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렇지만 괴산지역의 일부 단체의 반발로 고향에서 문학행사를 개최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선비고을에 '빨갱이' 추모행사를 하는 것은 수치라며 저항했기 때문이다.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홍명희 손자 홍석중 씨는 북한에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소설 '황진이'는 국내에서도 출간되었으며 만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여걸' 황진이의 삶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남북이 처음으로 원작소설에 대한 정식 저작권 계약을 거쳐 영화로 제작되었다. 송혜교가 황진이로 출연, 금강산 로케이션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다. 남북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 벽초 홍명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괴산에 홍명희문학관을 세우고 남북문학 교류의 새 장을 열자. 홍명희 생가를 민족운동과 민족문학의 숲으로 가꾸자. 우리 말과 우리 글의 가치를 되새기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특히 홍명희의 독립운동과 문학정신을 스토리텔링,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의 콘텐츠를 개발하면 좋겠다. 역사의식이 창작산실의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으니 홍명희의 불꽃같은 삶과 정신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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