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여전한 '독립의 함성'
3·1운동 100주년, 여전한 '독립의 함성'
  • 중부매일
  • 승인 2019.03.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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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열린 1일 청주 성안길에서 만세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 김용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가 열린 1일 청주 성안길에서 만세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 김용수

1919년을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원년으로 만든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았다. 곳곳에서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는 행사가 이어진 3·1절은 한 세기(世紀) 전 식민지에서 벌어진 전세계 최초의 독립운동으로 제국주의 몰락의 신호탄이었다. 3·1운동은 1차 세계대전 종전에 따른 약소 민족들의 독립의지에 불을 붙이고 중국의 5·4운동 등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만큼 우리 역사는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대사건이었다.

충청권에서도 3·1절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렸지만 100주년을 맞았음에도 행사의 내용이나 의미에서 앞서의 여느 해와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독립기념 사업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위안거리일 뿐이다. 지난 100년의 세월동안 26년여의 식민통치를 거쳐 우리민족은 그토록 고대했던 대한독립을 이뤄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이름을 올리는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다. 그러나 외세의 개입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이 계속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독립은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100년전 3·1운동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전개로 우리민족의 의지를 결집시켰고, 사분오열됐던 해외 독립단체들을 임시정부로 뭉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분단의 현실속에서 글로벌 무한경쟁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달여 새 삼천리 강산을 뒤덮었던 만세운동과 같은 전환점은 없더라도 진정한 독립을 위해 먼저 현재 우리의 위치를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잘못됐거나 놓쳤던 것은 고치고, 앞으로 새롭게 풀어나갈 것들을 챙겨보는 것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당장 독립운동의 산실이라는 충북의 경우 지역독립운동사가 정리돼 있지 않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독립애국지사를 발굴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지자체들은 모두 끝냈다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이같은 학술적 정비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애국지사들에 대한 기념사업도 확대돼야 한다. 3·1운동 민족대표 6명을 비롯해 충북에서 활동한 90여명의 애국지사 가운데 도내에 기념시설이 있는 인물은 단 4명 뿐이다. 이처럼 독립운동이 제대로 된 평가를 못받는데다가 단재를 제외하고는 애국지사들의 선양사업도 변변한 것이 없다.

더구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개선 작업도 아쉽다. 독립애국 활동보다 대중적 인지도에 따라 이들의 업적이 재단되는 현실은 개선돼야 만 한다. 우리 민족은 3·1운동을 통해 독립의지와 열망을 전세계에 알렸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독립에 대한 갈망(渴望)은 그치지 않고 있다. 분단이란 현실속에 과거사의 정리나 독립의지의 선양, 후손들의 평가와 인식 등 모든 것이 그렇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은 아무리 되새겨도 지나침이 없다. 3·1운동 100주년이란 역사적 시점이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살펴보고 또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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